공안당국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장경욱(46) 변호사의 ‘독일 포츠담 회합’ 사건과 관련해 22일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1년 전 그의 포츠담 회합을 주선한 시민단체 코리아연대 공동대표 이모씨와 회원 2명의 주거지 등이 대상이었다. 장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독일 포츠담에서 친북(親北) 단체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한반도 불안은 미국과 남한 탓이며, 해상 경계선을 새로 확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됐다.

공안당국은 이 사건을 1년 간 내사하다 압수수색을 하면서 본격 수사로 전환했다. 증거를 찾기 어려운 공안 사건에서 1년가량 내사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장 변호사가 그동안 주로 간첩 사건을 변호하면서 검찰과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이란 점에서 공안당국이 작정하고 수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말은 한다. 그러면서도 “명백한 혐의가 있는데 그냥 넘길 순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장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의 변호인으로 공안당국의 증거조작을 밝혀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사건의 변론 과정에서 증거 조작으로 보일 만한 행동을 해 공안당국으로부터 북한과 관련돼 있는 것 아니냐는 강한 의심을 샀다.

민변 장경욱 변호사가 지난 9월 서울 서초동 민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참석한 포츠담 세미나엔 리시홍 독일주재 북한대사, 대남 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산하 조국통일연구원의 박영철 부원장, 정기풍 실장 등 북한 인사 7명이 참석했다. 공안당국은 장 변호사가 이들과 접촉했는지 조사하고 있다. 남북교류법에는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사전에 신고하지 못했을 경우 사후에라도 신고하게 돼 있는데, 장 변호사는 이를 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장 변호사는 “북한 인사가 참석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이 만남이 사전에 계획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장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된 여간첩 이모씨를 변호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북한 보위사령부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신분을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씨를 2012년 7월에 찾아가 “(북한) 보위사령부와 관련해서는 무조건 진술을 거부하거나 부인하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이를 거부하고 국정원장 앞으로 장 변호사의 행태를 고발하고 대한민국으로 전향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장 변호사는 2011년 간첩단 ‘왕재산’ 사건 변호를 맡았을 때는 사건의 핵심 증인이던 모 대학교수를 찾아가 “(조사를 받게 되면)묵비권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변호사법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도 변호인이 의뢰인으로 하여금 허위 진술을 하게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초 장 변호사를 포함해 민변 소속 변호사 7명을 징계해달라고 대한변협에 청구했다. 장 변호사에 대한 징계 청구 사유는 여간첩에 대한 허위 진술 강요였다. 이후 한 달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장 변호사에 대한 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번 사건 수사는 검찰이 경찰을 지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압수수색에 나선 건 경찰이지만 검찰과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다. 수사 성패에 따라 파장이 일 수 있어 어떤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현재 공안당국은 장 변호사가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 장 변호사가 북한 인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등을 확보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장 변호사가 독일에서 북한 대남 공작부서 인사들과 만난 시기는 그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과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의 변호인으로 활동하던 때"라며 "그가 특정한 목적을 갖고 북측 인사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지도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