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 초등학교의 인기가 주춤하고 있다. 지난 10일 2015학년도 신입생 입학 추첨을 한 서울 지역 39개 사립초등학교(정원 3872명)에 8556명이 몰려 평균 2.2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서울 사립초 경쟁률은 2010·2011학년도 2.4대1로 정점을 찍은 후 2012학년도 2.2대1, 2013학년도 2.1대1로 조금씩 하락세를 보였다. 2014학년도에는 출산율이 높았던 황금돼지띠(2007년 출생) 학생 수가 많아 일시적으로 경쟁률(2.4대1)이 올라갔지만 올해 다시 내려앉았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신입생들이 교실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있다.

◇영어 수업 시간 줄어

사립초등학교는 10여년 전 영어와 예체능 특화 교육으로 초등교육에 돌풍을 일으켰다. 2009학년도에 7.6대1에 이르렀던 영훈초의 경쟁률은 올해 3대1로 떨어졌다. 2012학년도와 비교하면 올해 계성초(6.5대1→5.8대1), 이대부초(5.2대1→4.2대1), 경복초(3.3대1→2.9대1) 등의 경쟁률도 하락세를 보였다.

서울 사립초 경쟁률이 전체적으로 약화된 것은 '영어몰입교육'이 금지되고 영어 교육 시간도 줄어드는 등 '영어 메리트'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영어몰입교육은 수학·과학·사회 등 영어 이외의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당초 대부분의 사립초등학교는 영어 집중 교육을 실시해 학부모들의 관심을 끌었다.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서울 사립초 영어 수업 시간을 조사한 결과 학년당 연평균 223.5시간을 편성해 공립초의 56시간보다 4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해 사립초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영어 집중 교육에 제동이 걸렸다.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사립초에 영어몰입교육을 중단하고, 1~2학년에게는 영어를 가르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상 초등학교 1~2학년에게는 정규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가르칠 수 없고, 3~4학년은 주당 2시간, 5~6학년은 주당 3시간 내에서 영어 시간을 편성할 수 있다. 이 조치에 따라 사립초들은 방과 후 교실 등에 영어를 집중 편성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1~2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면 사교육을 조장할 뿐 아니라 모국어에 익숙해진 후 외국어를 배우는 게 좋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초등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도록 장학 지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영훈초·우촌초 등 영어몰입교육을 하는 학교 학부모들은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금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법원에 집행정지 신청과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하며 반발하고 있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는 "사립초가 영어 교육에 경쟁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 수준의 어학원들이 많이 생기고 단기 해외 연수 프로그램이나 국제학교 등 영어를 집중 공부하는 기회들이 많아져 사립초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고 했다. 두 딸을 사립초에 보냈다는 남모(42·서울 강남구 도곡동)씨는 "영어 때문에 사립초를 선택한 학생들이 많은데 이번 영어 수업 규제로 공립초로 전학 가는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불황 여파로 학비 부담감 커져

경기 불황 여파로 대학교 등록금과 맞먹는 학비가 학부모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교육부 국감 자료에 따르면 연간 수업료가 가장 비싼 사립초는 우촌초로 1002만원이었다. 계성초(760만원), 경복초(742만원), 홍대부초(714만원), 영훈초(708만원), 상명초(700만원) 등도 700만원이 넘었다. 100만~120만원인 입학금은 제외한 금액이다. 서울 39개 사립초(위탁 아동 학교인 알로이시오초 제외)의 연평균 수업료는 585만원이다.

수업료 이외에 통학버스비와 급식비, 현장체험학습비, 악기·스포츠 등 특기 적성 교육비를 합하면 부담은 더 커진다. 지난해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사립초 학생 1인당 평균 교육비(입학금 제외)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촌초(1236만원), 경복초(1172만원), 영훈초(1056만원), 매원초(1020만원), 한양초(1004만원) 등 5개교는 1000만원이 넘었다.

예비 학부모 전현주(39·서울 광진구 구의동)씨는 "사립초에 보내도 현장 학습에 엄마가 따라가는 학교가 있고 워낙 경쟁이 심해 음악·미술 학원도 별도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1년에 1000만원 가까운 학비 부담을 감수하고 보내기에는 사립초의 차별성이 그리 크지 않아 공립초에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전체 학생 수가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 8만3342명이던 신입생 수는 2013년 7만4066명으로 줄었다. 2014년 7만9538명으로 깜짝 증가한 것은 재물운이 좋다고 아이를 많이 낳았던 황금돼지띠가 입학했기 때문이다.

사립초는 영어 교육뿐 아니라 예체능 교육, 창의력 수업 등의 교육을 해온 것이 강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과 긴 통학 시간 등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얘기하는 학부모도 있다. 사립초엔 비교적 넉넉한 가정환경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좋은 인맥을 만든다는 장점이 강조됐다. 또 한편으론 공립학교와 달리 다양한 환경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강북의 한 사립초 교사는 "사립초가 급식 당번이나 등하굣길 교통 지도 등에 학부모 참여를 요구하지 않아 아이를 보내는 맞벌이 부부가 70~80% 정도를 차지한다"고 했다. 이인영 성신초등학교장(전 사립초등학교연합회장)은 "사립초가 영어에만 매달리지 말고 각 학교의 건학(建學) 이념에 따라 특화된 프로그램을 강화해 학생들의 선택 폭을 넓히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