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미용실에서 커트 가격은 남성이 25유로(약 3만5000원), 여성은 훨씬 비싼 35유로(4만9000원) 안팎이다. 바지 밑단을 줄이는 요금도 보통 남성 바지는 4유로(5600원)인데, 크기가 더 작은 여성 바지는 5유로(7000원)다. 똑같은 서비스를 받는데, 머리카락 길이나 바지 종류가 아니라 오직 성별(性別)에 따라 가격이 다른 것이다.
프랑스 여성 단체 '조르제트 상드'가 시장조사를 했더니, 칫솔조차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평균 3% 비쌌다. 일회용 면도기, 노화 방지 크림, 데오드란트(땀냄새 제거제) 등도 똑같은 물건에 '여성용'이란 단어만 붙으면 더 비쌌다. 이처럼 여성용 제품·서비스 가격이 더 높은 것을 프랑스에선 '장미 세금(taxe rose)'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금처럼 강제적으로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뜻이다. 여성 단체들은 시장조사를 근거로 '여성 차별'이라며 장미 세금 철폐를 요구했다. 결국 프랑스 경제부가 최근 "타당성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나섰다.
기업들도 그 나름의 근거를 댄다. 면도기는 남성용 제품이 수요가 많고 대량생산하기 때문에 생산 단가가 낮아져 가격이 싸다는 것이다. 땀 냄새 제거제도 여성용 제품엔 피부 보호제 등 특별 성분을 더 첨가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미용·패션 등 특정 서비스와 제품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더 낮다는 점을 이용한다는 해석이 더 타당성 있게 들린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은 가격 등락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남성과 달리 여성은 주름 제거제가 다소 비싸지더라도 구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수요 행태를 이용,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 특성에 따라 다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경제학에선 '가격 차별'이라고 한다.
성별에 따른 가격 차이는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동일한 제품·서비스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연간 1400달러(약 156만원)를 더 쓴다고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州) 등에선 성별에 따른 부당한 가격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가격 차별(price discrimination)
같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자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는 것. 기업은 소비자 그룹 간 가격에 따른 수요 탄력성이 다름을 전제로 나이·성별·구입 시기부터 소득 수준·상품에 부여하는 가치·구입 경험·구매처에 이르기까지 차별의 근거를 차등화한다. 영화관 조조 할인이나 청소년 할인, 국내·해외의 자동차 가격 차 등이 이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