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평안남도 순천에 위치한 비날론 비료공장지대는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노선의 상징이었다. 비날론은 1939년 나일론에 이어 세계 2번째로 개발된 화학섬유로, 북한은 1960~70년대에 이를 '주체섬유'라고까지 불렀다.
김일성 주석은 1983년 북한 최대의 석탄·화학 공장지대인 평남 순천에 100억 달러를 투자해 야구장 467개를 합친 만큼 엄청난 규모의 비날론 공장을 세웠다. 북한의 중앙 매체들은 수시로 순천 비날론공장의 ‘위용’을 보도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곳은 막대한 투자와 부지 규모를 무색케 할 만큼 폐허가 됐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 5일 공개한 아시아프레스의 동영상 속 순천 비날론공장은 공장 부지가 논과 밭으로 변하고, 앙상한 뼈대와 외벽만 남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각 구역을 연결하는 컨베이어 벨트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가동한 적이 없는 듯 녹이 슬어있고, 건물 안에는 제대로 된 장비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공장에 설치된 기계 대부분은 간부들이 다른 공장으로 빼돌렸고, 유리창과 건축 자재·지붕 등도 근로자와 인근 주민이 가져가 버렸다. 가동이 멈춘 파이프라인 아래에서는 주민들이 김매기를 하고 있고, 공장지대의 빈 땅은 이미 옥수수밭으로 변했다.
2009년 5월 인공위성이 촬영한 공장 부지의 사진을 2004년 당시와 비교해보면 폐허의 현장이 극명히 드러난다. 2004년 당시엔 기업소 부지 양쪽으로 어느 정도 공장의 형태가 유지됐지만, 2009년 사진에는 건물은 온데간데 없고 철제 구조물도 모두 뜯긴 채 빈터만 남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장 앞에 쓰인 ‘자력갱생’ '장군님 따라 천만리'란 말도 북한에서는 이미 철 지난 이야기가 됐다. 한때 ‘주체섬유'로 대접 받았던 비날론은 오늘날 옷의 재료로 쓰기에는 너무 빳빳하고 거친 재질이라 작업복 정도로만 쓰인다. 실제 북한 주민은 비날론을 걸레로 사용하거나 도배용 풀로 전용하고 있다고 RFA는 전했다.
북한은 풍부한 원료 석탄과 자체 에너지, 기술, 노동력을 결합해 스스로의 힘으로 화학산업을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내걸고 순천 비날론 공장에 투자를 집중했다.
하지만 순천 비날론공장은 석탄과 전력을 많이 필요로 해 북한의 열악한 전력과 기반시설 사정을 고려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모델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재질 등의 측면에서 다른 섬유에 비해 경쟁력도 크게 떨어졌다. 한꺼번에 덩치를 너무 키워 한 공장이 가동률이 떨어지면 다른 공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등 효율성도 크게 떨어졌다고 RFA는 전했다.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 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는 “순천 비날론 공장에 투입된 막대한 인력과 건설 비용은 모두 북한 주민이 떠안았다”며 “북한 경제의 마비, 아주 독선적이고 경제의 합리성을 생각지 않은 이데올로기 우선 경제 정책에 대한 실패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