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목요일 오전 6시 30분 360석이 넘는 상암CGV 아이맥스관이 꽉 찼다.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아침밥으로 산 핫도그 상자를 집었지만 금방 손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상영되는 3시간 내내 객석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 이어졌다.

인터스텔라는 과학을 공개적으로 내세운 영화다.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의 킵 손 교수가 처음 '블랙홀(black hole)'을 주제로 한 영화를 제안했고, 영화 제작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과 같이 연구한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다.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역시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중력이 엄청나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존재다. 그런데 영화의 블랙홀에서는 바깥쪽에 황홀한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묘사이다. 회전하는 블랙홀에서는 중력의 영향으로 시공간(時空間)이 뒤틀린다. 덕분에 뒤에서 빨려 들어가는 빛이 앞쪽으로 보이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물로 가득 찬 이 행성의 1시간이 지구의 7년이라고 하지만 영화에서 말한 지구 중력의 130%로는 그 정도 시간 지연 효과가 나지 않는다.

인류 종말을 앞둔 주인공들은 늘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찾은 지름길이 '웜홀(wormhole)'이다.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이 동료인 네이선 로젠과 제시한 것이라고 해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라고도 한다. 모든 물체를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빨아들인 물체를 내뱉는 '화이트홀(white hole)' 사이에 벌레가 먹은 듯 구멍이 생기면 거기를 통해 순식간에 다른 은하계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웜홀을 지나오니 제2의 지구가 될 후보 행성들이 거대한 블랙홀 주변에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마저 천천히 흐른다. 이 행성에 잠시 머물렀는데 지구에서는 이미 20년이 지났다. 나중에 젊은 아버지가 임종을 앞둔 늙은 딸을 만나는 장면 역시 중력에 따른 시간 지연 효과 때문이다.

인류가 다른 행성으로 이주(移住)하기 위한 열쇠 역시 블랙홀에 있었다. 현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는 양자역학을 기술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대통일장(大統一場)' 이론을 위해 5차원 공간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4차원, 즉 공간 3차원과 시간 1차원을 넘어 5차원이 돼야 중력이 다른 힘과 통일돼 세상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그 열쇠가 영화에서 5차원 블랙홀 안의 아버지로부터 지구의 딸에게 중력을 매개로 전달된다.

손 교수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과학을 심각하게 위배한 장면은 없었다"고 말했다. 굳이 따진다면 만 박사의 행성에 있는 얼음 구름 정도라고 했다. 얼음의 강도가 우주선이 착륙할 정도가 될 수는 없다는 것.

하지만 문제가 되는 장면들은 분명히 있다. 영화의 배경이 가까운 미래인데 그 먼 우주로 가는 우주선에 변변한 연료탱크가 없다. 또 물이 있는 행성에서 영화만큼의 시간 지연 효과가 나타나려면 지구 중력의 130%로는 턱도 없다. 지구보다 중력이 28배나 되는 태양에서도 시간 지연 효과가 1년에 66초에 불과하다. 블랙홀 내부나 웜홀의 존재 역시 또 하나의 상상일 뿐이다.

감동은 과학 자체보다는 과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딸을 위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아버지와 꼭 돌아오겠다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 동료를 믿고 홀로 미지의 행성에서 기다리는 우주인. 결국 과학의 볼거리보다는 사람 이야기가 영화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