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이 2년 6개월을 끌어온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격 타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열리는 양국 정상회담 전까지 FTA 합의를 목표로 실무진이 협상을 진행해왔다"며 "양국 정상이 10일 회담 때 타결을 선언할 가능성이 큰 상태"라고 말했다.

상품 분야 큰 틀에서 의견 접근

한·중 FTA에서 가장 큰 쟁점은 상품 분야의 개방 폭이었다. 특히 어느 품목을 관세 철폐 대상에서 제외할 것인지를 놓고 양국은 그동안 팽팽히 맞섰다. 우리는 농수산물 개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농수산물 품목별로 최대 300% 이상의 관세율을 유지하는 지금도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상황에서 시장을 개방할 경우 국내 농수산업에 큰 피해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해 농산물 교역에서 3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 정부는 전체 상품 1만2000여개 가운데 관세 철폐 제외 대상인 '초민감품목'(품목 수 기준 10%)의 대부분을 농수산물로 채웠다. 중국은 "제외 대상이 너무 많다"며 개방 확대를 요구했다.

韓·中 경제인들 FTA 촉구 -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지난 8일 열린 ‘제3차 한·중 CEO(최고경영자) 라운드테이블 회의’에 양국 경제인이 모였다. 왼쪽부터 장샤오위 ‘중국 국제 다국적 기업 촉진회’ 부회장, 위융 허베이철강 회장, 장젠칭 중국공상은행 회장, 정완퉁 ‘중국 국제 다국적 기업 촉진회’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양국 경제인들은 한·중 FTA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했다.

제조업에서는 양국(兩國)의 입장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중국에 수출하는 석유화학·철강 등 공산품의 관세를 철폐할 것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한국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만큼 공산품 시장을 열지 않겠다고 버텼다.

양국은 지난번 공식협상 때까지도 의견 차를 크게 좁히지 못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 속도가 빨라졌다. 중국은 미국·일본 등 21개국 수반(首班)들이 모이는 베이징 APEC 회의 때 한·중 FTA를 타결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계산이며 한국도 "올해 안에 한·중 FTA를 마무리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협상에 박차를 가해 왔다.

이에 따라 한·중은 지난 6일부터 양국 통상장관을 수석대표로 투입시켜 협상을 진행했다. 6일 열린 14차 공식 협상에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이 처음으로 협상에 나서 일괄 타결을 모색했다. 9일까지 계속된 비공식 협상에서 양국은 서로 보호하고 싶은 품목을 최대한 지키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산지 규정이 막판 변수로

한·중 FTA가 타결되면 한국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22.5%인 현행 한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철폐되면 한국산 자동차의 수출이 크게 늘 전망이다. 이 밖에도 전자·반도체·화학·화장품 등 분야에서 대중(對中)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상의나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에서도 "한·중 FTA 타결로 인해 중국 내수 공략이 훨씬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반면 관세 인하로 중국산 가공식품의 수입이 증가할 전망이다. 중국산 농산물 수입이 매년 급증하는 상황에서 중국산 가공 김치나 다진양념·과일통조림·가공 농수축산물 수입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농산물이 사실상 포장만 달리해서 한국에 무관세(無關稅)로 들어오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산지 규정 문제가 협상 막판에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타결을 낙관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최근 비공식 협상을 통해 원산지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재료나 부품을 수입해 한국에서 가공하는 경우 한국에서 생산한 부가가치의 비중이 60% 이상이 돼야 한국산으로 인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생산 부가가치의 비중이 35%일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한 한·미 FTA보다 원산지 규정이 크게 강화된 것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 측에 '40%'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 협상단이 원산지 카드를 꺼내 우리 쪽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양보를 끌어내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원산지 규정

국가 간에 교역되는 상품의 국적(國籍)을 판정하는 기준이다. A국이 B국의 원재료·부품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었을 때 일정 비율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A국의 원산지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B국이 A국을 경유해 무관세 혜택을 챙기는 것을 막자는 취지이지만 A국의 수출을 우회적으로 제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