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 기자] 영화 '잉투기'를 통해 영화 관계자들과 시네필의 관심을 끌었던 여배우 류혜영이 보다 큰 상업영화로 돌아왔다. 많은 이들이 충무로에서의 그의 성장을 점쳤는데, 그게 점점 현실화돼가는 그림이다.

'나의 독재자'는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상처를 받은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극 중 류혜영은 아들 태식(박해일)을 짝사랑하는 여정 역을 통해 특유의 통통 튀는 분위기를 발산한다.

연출을 맡은 이해준 감독과의 인연은 영화 '김씨 표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보충 촬영을 할 때 히키코모리 여주인공(정려원)이 헬멧을 쓰고 밖으로 나온 몽타쥬 한 컷이 필요했는데, 그 때 대역을 한 소녀가 류혜영이였다. `당시 18세.

인연은 흘러흘러 '나의 독재자'로 다시 만나게 됐다. 이 역시 운명적이였다. '잉투기'가 개봉하고 나서 돌연 어학 연수 차 비장한(?) 각오를 갖고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한 달 반 만에 돌아온 것이다.

"이건 어떤 여자가 (대본을) 받아도 놓치기 싫은. 누가봐도 하고 싶어하는 영화와 캐릭터였어요. 미국에서 시나리오를 메일로 받았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딱 봐고 '이건 내꺼다'라고 했죠. 자신감 있게 '내가 해야 살아난다'라고도요. 하하. 화상 채팅으로 감독님과 오디션 미팅하고 이후 한 세 번 정도 더 봤어요. 마지막에 감독님께서 '언제 (한국에)들어올 수 있냐'고 물으셨는데, 일주일만에 돌아왔죠. 당시 '잉투기'를 마치고 부모님께서, 이제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야할 시기 아니냐고 미국행을 말리시기도 했는데,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며 떠난 그런 애가 한 달 반만에 불쑥 온 거죠. 엄마가 무슨 슈퍼 갔다가 온 애처럼 왔냐며 막 웃으셨어요."

함께 출연한 배우 설경구는 그의 이상형이자 롤모델이란다. "촬영하면서 설경구 선배님처럼 연기를 앞으로 쭉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라는 존경심이요." 류혜영은 "현장에서 숨쉬는 것부터 전부 다 배움이였다.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그 현장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실감이 안 났다"라며 '나의 독재자' 촬영에서는 정말, 단 한 순간도 힘든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아무리 홍일점이라고는 하지만 설경구와 박해일 사이에서 신인 배우가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담이 되지 않았냐고 묻자 류혜영은 "솔직히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테지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선배님들이 연기할 때 위축되지 말라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주셨어요. 부담도 됐는데 마인드 컨트롤을 스스로 계속 했죠. 속으로 '어차피 앞으로 계속 (연기)할 건데'라고 말했고, 만약 내가 위축되면 오히려 다른 분들께 민폐라고 생각했어요. 진짜 제가 여정이처럼, 경구 선배님은 성근이고, 박해일 선배님은 태식이처럼 여겨야 했죠.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현장에서 셋이 있을 때 얼마나 편한 지 몰라요."

개성 미인으로서의 마스크와 자유 분방한 분위기를 지닌 류혜영은 그 개성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는 배우다. 어떤 캐릭터도 '류혜영 화' 시킬 것 같은 느낌. 이로 인해 감독들은 류혜영이 가진 걸 많이 바꾸려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신인 배우로서는 부담일 수도 있다. 자기 것을 지켜내느냐, 아니면 전혀 다르게 바꿔야 하느냐가 고민일 수 있는 것. 연기자가 개성이 강하면, 캐릭터를 입어도 자신만의 표현이 남아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실 이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 동전의 양면같은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조금은 답을 얻은 것 같아요. 설경구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떤 배역을 맡아도 난 설경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어떤 배역이든 저도 류혜영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러나 제가 만약 변호사 역을 맡는다면, 류혜영이 연기하는 변호사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다른 배우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극 중 여정이가 태식이에게 그랬 듯, 실제로도 류혜영은 박해일을 졸졸 쫓아다니녔다고. 쉬는 날에도 함께 산책을 했단다. 또 대기 시간에 함께 밥을 먹고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의 고민 같은 것을 주절주절 늘어놓았다고.

"최근 시사회를 마치고 간단한 술자리에서 박해일 선배님이 되게 진지하게 '너는 조급해 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너만 할 수 있는 것, 너 만이 가지고 있는 걸 지키고 있으면 언젠간 빛을 발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걸 믿고 기다리고 있으면 좋은 작품이 올 것이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감동받아 그 술자리에서 그 이후로는 아무것도 귀에 안 들렸어요. 박해일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는 것은, 정말 많이 고민 하시고 말씀해 주신거거든요. 촬영 현장에서 말했던 고민에 대한 선배님의 답이였는데,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실제 박해일은 이렇듯 답을 주는 고마운 선배이지만, 영화에서 박해일이 분한 태식은 여성들에게는 자못 밉상이다. 왜 여정이는 계속 밀어내는 태식에게 저렇게 민들레 같을까. 일면 가슴이 아픈 부분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묻자 류혜영은 "여정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 친구(여정)가 사랑스럽다고 느꼈어요. 여정이는 자라오면서 사랑을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온전한 가정 안에서 자란 아이는 아니더라도, 길러준 분이 할머니든 어머니든 아버지든 그 분들이 사랑을 가득 가득줬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태식이가 매몰차게 굴어도, 태식이가 여리고 상처가 많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해서 여정이가 사랑을 줄 수 있을 거죠. 피드백이 오지 않아도요."

왜 그렇게 여정이는 태식이가 좋을까, 라고 물었다. "좋아하는 데 이유는 없죠. 마냥 좋은거예요. 그런데 촬영이 없는 날 집에 오면 너무 외롭더라고요. 태식이 매몰차게 굴고 여정이를 싫어하는 듯 표현하는게 마음에 남아 있어서요. 그래서 감독님이 밉기도 했어요. 여정이가 실제 나라면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요. 실제론요? 나 싫다는 사람이면 가라고 하죠. 하하."

화제를 돌려, 요즘 최대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류혜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21살 때부터 매년 해피뉴이어를 다른 나라에서 맞는 게 목표인데 이번에는 어디에 갈까 생각중이다"라고 대답했다. "개인적으로는 네덜란드에 가고 싶은데, 거기까지 가는 여비는 안 될 거 같아요. 열심히 모아도 안 될 거 같은데. 하하."

그는 배우 최민식, 설경구, 이정재, 곽도원, 이범수 등 충무로 주연 배우들이 대거 포진된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소속 연예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의 워크숍에 다녀왔냐는 질문에 "아직 못 가봤다"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설경구 선배님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시는데요, 정말 재미있어요.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몇 십 명이 다 흥분해 있다고요. 사진을 보며 '이거 지금 가위바위보 하는거야' 이렇게 말씀해주세요. 회식 같은 데 가면 4차원 같고 엉뚱하다고 해요. 그러면 기 죽지 않고 '제가 씨제스의 간판은 못 돼더라도 마스코트가 되고 싶다'고 해요. 그러면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하시고. 크크"

'판타지 영화'를 꼭 해 보고 싶다는 그는 할리우드 진출도 꼭 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웃어보였다. "조급하지는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잡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어딘가 모르게 '헝거게임'의 주인공 제니퍼 로렌스를 닮았다. 팔딱거리는 싱그러운 에너지와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쳐 흐른다. '헝거게임' 같은 판타지 액션 연기를 펼쳐도 전혀 어색할 거 같지 않은. 이에 류혜영은 환하게 웃으며 "와우, 완전 좋아하는 배우예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다시한 번 환하게 웃어보였다.

마지막으로 주연배우로서 '나의 독재자'에 대한 관람 팁을 애기해달라고 했다. "'나의 독재자'는 출연한 제가 보면서도 너무 뿌듯한 영화였어요.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이것만은 확실해요. 좋은 영화라는 것만은요. 여정이는 마냥 사랑이 많은 아이니까 예쁘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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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