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시민 40여명 중 14명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아 음악이나 영상, 게임을 즐기거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드라마에 열중하던 대학생 김모(23)씨는 보행 신호로 바뀐 걸 뒤늦게 알고 황급히 도로로 내려섰다. 불법 우회전하던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김씨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이 철렁한 것도 잠시. 김씨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걸었다. 그는 "습관이 돼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회사원 조모(31)씨는 최근 서울 마포구 성산대교를 건너다 앞차를 들이받았다. 음악을 들으려 스마트폰 앱의 재생 버튼을 찾느라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사고가 났다. 한눈을 판 대가는 차량 수리비 1500만원과 전치 2주 진단이었다. 조씨는 "운전 중 DMB 시청이 올 2월부터 법으로 금지된 이후엔 주로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TV를 본다"고 했다.

DMB를 켜 놓은 채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전화를 걸고 있는 운전자(왼쪽 사진). 스마트폰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운전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운전자도 늘어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부근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조작하며 길을 건너는 모습. 운전자도 보행자도 스마트폰에 주의를 뺏기면서‘전방 주시 태만’에 의한 교통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참사 이후 20년간 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이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안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 같은 '스마트 기기'들이다.

교통안전공단과 현대해상이 지난해 공개한 '스마트폰 사용과 보행 사고 상관관계 연구'에 따르면 차와 사람이 부딪친 교통사고 가운데 스마트폰이 원인인 교통사고가 3년 새 94%나 증가했다. 2009년 437건이던 스마트폰 사고가 2012년 848건으로 급증한 것이다. 서울 강남경찰서 강복순 교통과장은 "10년 전엔 보행 중 사고라면 대부분 어린아이나 취객, 노인이 피해자였다"고 말했다. 강 과장은 "최근엔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이어폰을 꽂고 가다 사고를 당한 20~40대가 확연히 늘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은 사용자 자신을 위험하게 할 뿐 아니라 대중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지난 7월 강원도 태백에서 일어난 열차 추돌 사고도 스마트폰이 원인이었다.

열차 기관사 신모(49)씨는 운행 중 휴대전화 전원을 끄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지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다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승객 1명이 숨지고 93명이 다쳤다. 검찰 조사 결과, 신씨는 올해 초부터 134차례나 열차 운행 중 휴대전화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스마트 기기가 사람과 대중교통을 '공공의 시한폭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단순히 전화를 받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을 넘어 음악 감상과 이메일·뉴스 확인, 스포츠·영화 감상까지 즐긴다.

김민식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은 시각·청각 정보 처리뿐 아니라 손가락을 움직이는 동작까지 요구하기 때문에 위험을 인지하는 인간의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교통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평상시 120~150도 범위를 볼 수 있는 사람의 시야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을 땐 20도 이내로 줄어든다. 음악을 들으며 걸을 때는 자동차나 자전거 경적을 인지하는 거리가 절반 이상 짧아진다. 스마트폰을 쓰며 걷는 보행자는 사고를 당할 위험이 76%나 증가한다.

교통안전공단은 "미국 버지니아 공대 연구 결과, 운전 중 전화를 걸 때 사고 위험이 2.8배로 증가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는 위험이 23.2배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청(NHTSA)은 '운전 중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행위가 음주 운전보다도 6배 이상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배형원 세브란스병원 안과 교수는 "휴대전화를 보면서 이동하는 건 눈 가리고 귀 막은 채로 길을 걷거나 음주·졸음 운전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간의 편리함 때문에 안전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은 교통사고 통계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어서며 세계 수위를 다투는 한국이 '보행자 사고 대국'이 된 건 우연이 아니다. 2011년 우리나라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 중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39.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가장 낮은 나라인 노르웨이(10.1%)의 약 4배, OECD 평균(18.8%)의 2배가 넘는 수치다. 2009년부터 올 7월까지 6년간 발생한 전국 고속도로 교통사고 가운데 운전자가 한눈을 팔아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3071건으로 과속(2892건), 졸음 운전(2783건)보다도 많았다. 2010년까지 300건대를 유지하던 이 같은 '전방 주시 태만' 사고는 2011~2013년 연평균 721건으로 갑절을 넘었다. 사고가 급증한 시기는 국내에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도입·보급된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지난 2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운전 중 DMB 등 영상 기기를 시청할 경우에는 6만~7만원 범칙금이 부과된다. 운전자들은 이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운전 중 DMB 시청이 가능한 '불법' 내비게이션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택시기사 전모(52)씨는 "주행 중 스마트폰으로 가끔 스포츠 중계를 틀어놓는데, TV를 보다 단속됐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스마트 기기는 우리 생활 전반에서 편의의 질을 끌어올린 만큼 안전의 질은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스마트 기기를 생산·제조하는 기업은 자동 볼륨 조절 같은 안전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사용하는 시민들은 '나뿐만 아니라 남까지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일상에서 '스마트 기기 안전 사용법'을 생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