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올림픽부터 5종 경기 중 하나로 치러진 유서 깊은 종목, 레슬링. 어떤 기구도 필요없이 상대방과 살을 맞대면서 오직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 누가 타이어를 많이 들었다 놨다 했는지, 누가 밧줄에 더 오래 매달려 있었는지로 금메달의 주인이 가려진다. 원초적인 경기 방식이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 가장 남자답고 솔직한 스포츠다.
레슬링은 역대 올림픽에서 11개, 아시안게임에선 49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효자종목이다. 안한봉, 박장순, 심권호 등 숱한 스타들을 배출해온 전통의 메달밭이었지만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 레슬링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것은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28년 만이었다.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지난해 9월 극적으로 살아남는 등 지옥과 전당을 오갔던 레슬링은 '명예회복'을 위해 이번 아시안게임을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레슬링 효자 종목 복귀의 중심에는 '작은 거인' 정지현(31·울산 남구청)이 있다.
2002년 만 19세에 태릉선수촌에 입성한 이후 그는 10년 넘게 그레코로만형의 대표주자로 활약해왔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60kg급 금메달을 시작으로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금을 캐왔던 그지만 유독 아시안게임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2년 부산대회에선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고, 2006년 도하대회 때는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2010년 광저우대회에선 아내의 뱃속에 있던 아이의 태명을 '아금(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고 지으며 우승을 노렸지만, 은메달에 그쳤다.
최근 정지현은 지난 4월에 열린 아시아시니어레슬링선수권대회(이하 아시아선수권) 71㎏급에서 우승하며 2004년(60kg급)과 2006년(66kg급)에 이어 3번째로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했다. 투기 종목에서 2번씩이나 체급을 올려 정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장점인 지구력과 스피드는 물론 베테랑다운 노련한 경기운영까지 더해져 이번 아시안게임 전망을 한층 밝게 했다.
태릉선수촌 필승관 내 레슬링 훈련장의 문을 열자 선수들의 온갖 고함과 거친 숨소리가 귀를 찌른다. 20kg가 넘는 케틀벨(cattel bell·소 얼굴 모양의 아령)을 한 손으로 장난감처럼 휘두르고 200kg가 넘는 타이어를 쉴 새 없이 뒤집는 등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훈련의 연속이다. 태릉선수촌 내에서도 레슬링 선수들의 훈련은 혹독하기로 유명한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훈련 강도를 더욱 높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수들의 몸동작은 번개처럼 빨랐고, 발놀림은 유연했다. 극한의 훈련을 마치고 만난 정지현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