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암 사망자들은 과연 편안하게 세상과 작별하고 있을까. 취재팀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뢰해 암 사망자들의 '마지막 한 달'을 분석했다.
◇마지막 한 달까지 항암제 쓰는 나라
분석 결과 사망 한 달 전~사망 당일까지 마지막 한 달 동안 항암 치료를 받은 사람이 5년 새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25.0%→30.5%). CT를 찍는 사람(37.0%→44.8%)과 MRI를 찍는 사람(7.5%→10.1%)도 빠르게 늘어났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부학장이 "정부가 암 환자 본인 부담금을 5% 이하로 낮추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했다.
◇환자가 편해졌을까
문제는 과연 '환자가 편해졌는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회의적이었다.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마지막 한 달은 항암 치료가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되는 단계"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물론 항암제가 순해지기는 했다. 과거의 항암제는 암을 독하게 무찌르느라 환자 몸까지 무너뜨렸다. 요즘 항암제는 암을 살살 달랜다. 증상을 완화하고, 남은 생명을 연장시킨다.
하지만 아무리 약이 좋아져도 치료를 중단하는 게 차라리 나은 순간이 누군가에겐 온다. 정현철 대한임상암학회 이사장(연세대 교수·종양내과)은 "간·콩팥 등의 기능이 떨어져서 환자의 몸이 약을 감당하지 못하는 시기"라고 했다. 이른바 말기다. 허대석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장(서울대 교수·혈액종양내과)은 "말기 환자는 100명 중 95명이 10주 이내 사망한다"고 했다. 김동찬 대한중환자학회장(전북대 교수·마취통증의학과)이 "이때 항암제를 쓰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지 회의적"이라고 했다.
◇값비싼 검사… 하고 또 하고
마지막 한 달 동안 CT와 MRI를 찍는 사람이 늘어난 걸 무조건 나쁘다곤 말할 수 없다. 둘 다 기본적으로 항암 치료 방향을 잡는 데 필요한 검사지만, 마지막 한 달 동안에도 응급처치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
정현철 이사장이 "가령 위암 말기 환자가 갑자기 복수가 차면 암 덩어리가 일시적으로 담도를 막은 건지, 간 기능이 떨어진 건지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전자의 경우라면 막힌 곳만 뚫어줘도 환자가 한결 편안해진다. 후자의 경우엔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이런 합리적 이유 없이 무리하게 항암 치료를 계속하느라 CT와 MRI를 찍는 경우다. 병원은 돈 벌지만 환자는 오히려 고달프다.
전문가들은 "엉성한 의료 체계도 문제"라고 했다. 김열홍 전 대한항암요법연구회장(고려대 교수·종양혈액내과)은 "미국은 항암 치료만 큰 병원에서 받고, 일상적인 보살핌이나 응급처치는 작은 병원에서 받는 사람이 많다"면서 "작은 병원 의사가 환자를 잘 아니까 굳이 검사를 새로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암 환자는 일단 큰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응급실 의료진은 환자 상태를 잘 모르니 각종 검사를 또 하게 한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 달라"
박상은 안양샘병원장이 "우리나라는 가족만 정확한 상태를 알고 환자 본인에겐 숨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경우 환자는 '뭔가 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보호자는 그 바람을 외면하기 어렵다.
정현철 임상암학회 이사장이 "환자가 '최선을 다해 달라'고 하는데, 의사가 '안 된다'고 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의사가 "아무 소용 없다"고 했다가 환자가 지레 절망하거나 대체 요법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막막함'이라는 고통
장윤정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장이 "우리나라에서는 암 치료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사람'이 사라진다"고 했다.
"병원·환자·보호자 모두 암을 없애는 걸 제일 중요한 일로 쳐요. 그 과정에서 사람이 힘들어지는 건 뒤로 밀려요. 더 이상 치료를 견뎌낼 수 없는 몸이 됐을 때 그걸 일깨워주는 장치가 없어요. 우리나라 병원은 암을 없애는 치료는 잘해요. 암이 없어지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아요."
호스피스에 가면 뭘 어떻게 해주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어디 가서 줄 서야 하는지…. 이런 걸 상세하게 알려주는 제도가 없다. 환자와 보호자가 '알아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물어물어 알맞은 기관을 찾아내도 누울 자리가 있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 인구 규모라면 호스피스 병상이 2500개는 돼야 한다. 현실은 달랑 864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