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늘리겠다.'

'호스피스 지원하겠다.'

최근 10년간 복지부는 이런 보도 자료를 24차례 냈다. 전문가들은 "그런데 실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말'은 참 많이 했지요." (허대석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 학회장·서울대 교수)

원래 계획은…

더 이상 수술도 항암제도 소용없는 말기 암 환자가 불필요한 고통 없이 편안하게 마지막 나날을 보내도록 돕는 곳이 호스피스다. 우리나라는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1963년 강릉 갈바리의원에서 첫 환자를 받았다.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이후 한 세대 넘게 한국 호스피스는 제도권 바깥에 머물렀다. 정부도 국민도 '호스피스는 뜻있는 사람들이 펼치는 봉사 활동'이라고 생각했지, 국가가 관리·감독하면서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의료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암 환자가 계속해서 늘어났다. 한 해 암으로 숨지는 사람이 한 세대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1983년 3만명→2012년 7만명). 암이 한국인 사망 원인 1위가 됐다(28.1%).

그러자 정부가 2003년 "호스피스를 법제화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2006년에는 "우리나라 인구 규모라면 전국적으로 호스피스 병상이 2500개 정도 있어야 한다"면서 "단계적으로 호스피스 병상을 늘려 2015년까지 2500개를 채우겠다"고 했다. 당시 한국 호스피스 병상은 307개였다.

실제 벌어진 일은…

그때만 해도 복지부는 2010년까지 우선 1000개 병상을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그 해가 돼도 실제 병상은 673개에 그쳤다. 그다음 해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목표 달성 시한인 2015년만 한 해 한 해 닥쳐왔다.

그러자 복지부는 지난해 목표를 수정했다. 2015년까지 2500개 병상을 만드는 게 애초 목표였는데, 2020년까지 1400개 병상만 만들기로 목표를 낮춰 잡았다. 기한도 늦추고 병상 수도 줄였다. 현재 전국 호스피스 병상은 864개다.

듣기 좋은 부분만 발표

문제는 복지부가 이런 사정을 국민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목표 자체를 하향 조정했다"고 밝히는 대신 도리어 "지금보다 호스피스를 대폭 늘리는 정책"이라고 발표했다. 정부에 불리한 부분은 쏙 뺀 것이다.

윤영호 서울대 의대 부학장이 "말기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각하면 정부가 한 행동은 옳지 않다"고 했다. 서울·부산 같은 큰 도시도 호스피스 병동이 부족하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아예 없는 곳도 많다. 그 결과 말기 암 환자가 편히 죽을 장소를 찾아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대기자' 번호표를 받는 일이 벌어진다.

일부 호스피스 병동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한 달 이상 못 있는다'는 식으로 제한을 둔다. 그 바람에 한 달이 지나도 숨지지 않은 환자가 다른 데 자리가 있나 다시 알아본 다음 앙상한 몸으로 앰뷸런스에 오르는 일이 왕왕 생긴다.

"공무원은 절박하지 않다"

허대석 서울대 교수가 "저희는 죽어가는 사람을 날마다 직접 보니 마음이 절박한데, 공무원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복지부에 찾아가 '호스피스 정책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달라'고 설득한 게 몇 번인지 모릅니다. 한참 설명하면 다들 '맞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아, 이제 뭔가 되겠구나' 하지요. 다음에 찾아가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습니다."

취재팀이 최근 10년간 담당 과장이 몇 번 바뀌었나 확인해보니 10번이었다. 전임자 9명 중 1명만 32개월 근무하고, 나머지는 1인당 1년이 못 되게 근무했다(평균 11개월 2주일). 지금 과장은 올 초에 왔다.

"왜 임기 중에 목표 달성을 못 했느냐"고 묻자 10명 중 3명이 인사 요인을 댔다. "업무를 맡은 지 얼마 안 돼 해외 발령이 났어요." "담당 부서가 통폐합돼 인력이 줄었어요."

다른 대다수는 조직 안팎을 탓했다. "저는 열심히 하려 했는데, 국립암센터가 안 따라줬어요." "복지부 윗사람들이 소극적이었어요." "우리는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병원들이 '돈이 안 된다'면서 거부했어요." "다른 큰 사건이 자꾸 터져서 이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제 임기 때 저는 잘했다"는 사람도 1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