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근거로 조사를 합니까. 돌아가세요."

작년 9월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 관리실 직원들이 서울시 주택정책실 공무원들을 막아섰다. 이 오피스텔 관리인이 주차 수입금을 빼돌린다는 민원이 접수돼 서울시 공무원들이 나섰지만, 협조를 부탁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와 달리 현행법상 오피스텔에 대한 행정기관의 조사·감독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며칠 후 공무원들은 이 오피스텔을 다시 찾았지만 "왜 자꾸 오느냐"는 핀잔만 듣고 돌아갔다. 당시 서울시는 오피스텔 7곳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나, 법적 근거가 없다며 버틴 3곳에 대해선 조사를 하지 못했다.

관리 비리 민원 늘어도 오피스텔은 '행정 사각지대'

최근 오피스텔·상가 등 소유권이 구분된 '집합건물'이 급증하면서 집합건물 관리 비리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늘고 있다. 서울시 집합건물은 2000년 5만8574동에서 2013년 12만2000동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접수된 집합건물 민원 상담도 작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시가 "아파트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며 집합건물 첫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작년 전체보다 150건 정도 많다.

집합건물 민원이 많은 것은 아파트와 달리 일정한 근거도 없이 특정인에 의해 관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거주자 대부분이 세입자라 관리비 공개 등을 요구해도 관리인이 듣질 않는다. 관리업체 선정, 여유 공간 임대 및 주차장 사용 등 각종 이권 때문에 관리인 자리를 놓고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집합건물에 적용되는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은 '주택법'(아파트 적용)과 달리 행정기관이 개입해 조사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집합건물 실태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다. 집합건물은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인 셈이다. 현재 소유자·세입자·관리인 간 분쟁은 민사소송을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서울시 건의에 '답 없는' 법무부… "공공성" VS "사적 영역"

서울시는 작년 12월 행정기관 지도·감독 권한 신설, 회계 자료 보관 기간 명시 등 집합건물법 개정을 건의하는 공문을 법무부에 보냈지만 법무부는 현재까지 별 움직임이 없다.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관계자는 "집합건물법은 일종의 '민사특별법'으로 사적 영역을 다루므로 행정기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는 집합건물 상당수가 주거용 오피스텔이고 상가인 경우도 입주자 영업을 위해 보호가 필요한 만큼, 개인 간 합의에만 맡기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집합건물을 직접 조사할 수 없다고 하면 민원인들은 '직무 유기 아니냐'고 말한다"며 "집합건물법이 민법 계열이라 행정력 개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법을 너무 기계적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부종식 변호사도 "자체 조사 결과 서울 내 집합건물 70% 정도가 제대로 관리가 안 돼 분쟁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행법이 관리비 항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회계가 불투명하므로 지자체가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9월 두 번째 집합건물 실태 조사에 나서려는 서울시는 고민에 빠졌다. 올해 상반기 집합건물 민원이 크게 늘면서 조사할 곳은 많아졌는데, 작년 몇몇 오피스텔이 조사를 거부한 것에 대한 '학습 효과'가 생겨 이번에 조사에 응하지 않는 오피스텔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도 지자체에 집합건물 감독권을 부여하는 집합건물법 개정안이 작년 11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제출됐지만 여전히 심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