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수년 전만 해도 국내 대형 경기장들은 낡은 시설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축구장은 잔디가 듬성듬성해 '맨땅에서 공을 찬다'는 말이 나왔고, 야구장은 비가 조금 와도 물이 고여 경기가 취소되곤 했다. 2000년대 들어 월드컵 등 대형 행사와 팬들의 관심 증가로 국내 경기장은 현대식 시설로 바뀌는 '인프라 르네상스'를 맞았다. 하지만 새 옷으로 갈아입은 최근에도 경기장 시설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6일 FC서울과 울산 현대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의 관중석은 본부석 건너편 대부분이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이는 주말에 열릴 콘서트에 대비해 무대를 미리 만들어 놓으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서울 팬들은 이날 '대한민국 축구 현실', '축구장에선 축구가 우선' 등의 글귀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불만을 표시했다.
전날 롯데와 NC의 프로야구 경기가 치러진 부산 사직구장은 조명탑 고장으로 5회 도중 경기가 중단됐다. 여름 더위를 프로야구로 씻어낼 생각으로 경기장을 찾은 1만2000여 팬이 허무하게 발길을 돌렸다.
◇이원화된 구조가 문제 불러
경기장이 몸살을 앓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관리와 사용 주체가 이원화된 구조가 꼽힌다. 현재 국내 대형 경기장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 운영은 보통 지자체 시설관리공단이 담당한다. 각 구단은 경기장을 빌려 쓰는 '세입자' 신세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홈으로 쓰는 서울의 경기는 A매치(국가대표 간 경기·1순위), 공공행사(2순위) 등에 이어 3순위다.
관리 단체와 사용하는 단체가 다르다 보니 갈등이 끊임없이 생긴다. 운영 주체들은 수익을 위해 각종 대관 사업을 할 수밖에 없고, 최상의 환경에서 경기를 갖길 바라는 구단 측에선 불만이 생긴다.
양측의 입장 차는 사후 보수 등을 놓고 옥신각신할 정도로 첨예하다. 수원 삼성은 지난해 9월 28일 홈구장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조용필 콘서트로 잔디가 손상되자 수원시 측에 보수를 요청했다. 관리공단이 파인 부분에 녹색 알갱이를 뿌리는 등의 '땜질' 조치에 그치자 수원 삼성 측에선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재보수를 요구했다.
◇무성의한 설계로 촌극 빚어
건립할 때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경우도 있다. 작년 12월 완공된 광주 챔피언스필드는 지난 2일 태풍 나크리로 인한 강풍 때문에 지붕 패널 15개가 날아갔다. 홈팀 KIA는 안전 점검을 이유로 3일과 4일 경기를 취소했다. 지은 지 1년도 안 된 경기장 시설에 문제가 발생한 건 기능보다 디자인에 치중한 설계가 원인이었다.
인천 송도 LNG 야구장에선 주변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 웃지 못할 촌극까지 빚어졌다. 인근 음식 쓰레기 자원화 시설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지난 1일 퓨처스리그 SK―LG전이 5회에 중단됐다. 이 경기장은 다음 달 개막하는 인천 아시안게임 소프트볼 경기가 열리는 곳이다. 자칫 국제적인 망신까지 당할 가능성이 크다.
임충훈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설계 초기 단계부터 경기장을 짓고 관리하는 지자체와 그곳을 사용하는 구단이 긴밀하게 논의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