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작가를 추천해 함께 전시하는 이색 기획전이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다.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획된 '스펙트럼-스펙트럼'전(展). 리움의 대표적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아트 스펙트럼' 출신 작가 7명이 신진 작가 7명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팝아티스트 이동기(47)의 대형 회화 '파워 세일'이 압도적으로 시선을 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 회화, 백화점 세일 광고, 북한의 선전화, 일본의 핵폭발 사건 이미지 등 파편적 이미지를 한 화폭에 섞었다. 추상과 구상, 현실과 판타지, 대중문화와 순수미술 등 전통적 경계에 도전하는 시도. 작가는 이를 '절충주의'라 설명했다. 세로 3.8m, 가로 8.4m의 대작이다.
이동기가 총천연색 유쾌한 만화의 세계라면 그가 추천한 신진 작가 이주리(28)는 정반대다. 화면은 흑백이고, 사지(四肢)가 절단되는 등장인물은 팀 버튼의 잔혹 만화를 연상시킨다. 둘은 세대도 다르고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 이주리를 추천한 이유에 대해 이동기는 "뉴미디어와 개념 작업이 주류가 돼버린 현대 미술계에서 나이 든 매체로 전락한 그림에 헌신하려는 젊은 작가를 향한 응원"이라고 했다.
미나와 사사의 출품작 '라이프 세이버스(Life Savers) 2014'는 대한민국의 지금, 여기를 꼬집는다. 작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된 온라인 검색어 중 하나인 '진정성'을 '진'과 '정성' 둘로 분해한 텍스트 작업을 시도했다. 빨간색 바탕의 벽면에 크게 쓴 '진' 자가 오히려 '새빨간 거짓말'을 연상시킨다. 그 옆 벽면에는 '진정성'에서 '진'을 떼어낸 '정성'이란 글자를 700번이나 정성스레 적었다. 반대편 벽면에는 구명 튜브 모양의 사탕 '라이프 세이버스(Life Savers)' 모형이 걸려있고, 그 옆에는 24개의 화살표가 강박적으로 출구를 가리키고 있다. '안전제일'을 외치고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를 연상시킨다.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펼친 전시. 한국 사회에 대한 좌절과 분노, 실망과 위트가 26점의 출품작에 뒤섞여 있다. 10월 12일까지. 어른 3000원. 1577-7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