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던 게임 회사가 실제 농촌 주민을 캐릭터로 만들어 재기를 노리나 결국 패가망신한다.(‘두덕리 온라인’) 교사가 맨날 조는 학생을 꾸중하려 어머니를 학교로 소환하지만, 어머니마저 곯아떨어진다.(‘졸음’)
"발가락으로 그려도 이것보단 낫겠다." 이 만화에 이런 평가는 일상이다. "마약 먹고 그리느냐"는 말도 듣는다. 그는 이런 얘길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그림 그려도 돈 들어오잖아요." 황당무계 웹툰의 원조, 만화가 이말년(본명 이병건·31)이 말했다.
2009년, 붓펜으로 대충 갈긴 듯한 그림체와 뜨악한 줄거리의 '이말년 씨리즈'를 출범시키며 그는 이른바 '병맛(비호감이지만 유쾌한 대상을 일컫는 신조어)'의 거두(巨頭)가 됐다. TV에도 진출해 지난 4월 tvN 'SNL코리아'가 그의 웹툰 한 회를 통째로 패러디한 데 이어, 추후 협업도 약속했다. 웹툰이 TV 예능 꼭지로 제작된 건 처음이다. "병맛과 사회적 메시지 둘 다 있다"(tvN 박성재 PD)는 평에 대해 이말년은 "별생각 없이 그린다. 분석하면 재미없다"고 대답했다. 2011년엔 그의 웹툰이 과자 봉지에도 인쇄된 적이 있다. "과자 회사 운영하던 아버지한테 도용당한 거예요." 봉지 뒷면 문구는 이랬다. '감칠맛에 울고, 병맛에 웃어라.'
그는 '갈라파고스 거북이'다. "체계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근본이 없어요. 갈라파고스 섬에 사는 동물처럼 그냥 독자적으로 생겨버린 거죠." 요상 망측한 그림체에 대해서도 솔직했다. "내 그림은 못 그리는 그림이다. 못 그리는데 특이하게 못 그리는 거다."
끼적대는 게 좋아 고등학교 1학년 때 만화부 시험을 치렀다. 선배가 쪽지를 주고 갔다.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미대 입시학원에서 소묘만 1년을 했는데, 2개월 한 애보다 못 그렸어요."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갔지만 만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2009년, 장난 삼아 인터넷에 올린 웹툰 '불타는 버스'를 보고 포털사이트 야후에서 연재 요청이 들어오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온통 웰메이드만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말년은 그의 호(號)다. “평생 말년 병장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지었다. 나른한 삶을 동경하는 그지만, 매일 5시간씩 아이디어를 짜고 그리는 노력파다. 지금은 장편 웹툰 ‘이말년 서유기’를 연재 중이다. “단편만 그리다 보니 자기 복제를 하게 되더라고요. ‘피식’이 아니라 ‘빵’ 터지는 만화를 그려야 해요. 발작하는 만화요.” 말년 이후를 고민하는 말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