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 상태에서 심장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에게 집도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끔찍한 일이다. 손발이 묶여 있고 몸 움직임을 줄이는 근육 이완제를 맞았으니 통증을 느껴도 꼼짝할 수가 없다. 입에는 산소와 마취 가스가 들어가는 인공 기관(氣管)이 물려 있어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수술 중 마취제 농도가 떨어지면서 의식이 깨어나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마취 중 각성'으로 공포를 느꼈다며 항의하는 환자가 아주 드물게 있다.
▶정맥주사로 진정제 프로포폴이나 미다졸람을 투여해 수면 마취를 하는 경우 깨어나는 과정에서 환자가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꽤 된다. "○○야! 그렇게 살지 마라" "네가 내게 해준 게 뭐냐"…. 때론 욕설도 한다. 반쯤 잠든 상태에서 마음에 쌓아뒀던 말이 튀어나왔다가 완전히 깨면 기억을 못 한다.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니 수면 마취는 아는 의사한테 받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미국 병원에선 '당신은 아프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문구를 곳곳에 붙여놓는다. 애써 통증을 참지 말라는 뜻이다. 예전엔 통증을 참아야 병이 잘 낫는다고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진통제와 마취제가 병세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요즘 사람들은 조금만 아파도 참지 못한다. 고급 건강검진센터에서는 피 뽑을 때도 마취 연고를 바르고 한다. 내시경은 물론 털 뽑는 제모술, 미용 레이저를 얼굴에 문지를 때도 수면 마취를 한다. 이러니 앰풀 하나로 여러 명에게 쓸 수 있는 프로포폴이 국내에서 한 해 60만개 넘게 소비된다.
▶마취과 의사 없이 한 명의 의사가 수면 마취도 하고 시술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술 의사들은 환자가 아파서 자꾸 몸을 움직이면 처치에 집중이 안 된다며 환자를 깊이 재우려 한다. 수면 마취제를 지나치게 주사하기 쉽다. 그러면 마취제가 뇌의 호흡 중추를 억제해 숨 쉬는 횟수와 혈압을 떨어뜨린다. 환자가 엎드려 있거나 얼굴을 수술용 천으로 덮고 있는 경우 까딱하면 의사가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다 저산소증 뇌손상 사고가 난다.
▶미국에서는 환자의 산소 포화도를 측정하고, 떨어지면 경고음이 울리는 장치가 있어야 수면 마취를 할 수 있다. 마취 중 각성 상태를 숫자로 표시하는 검사기도 보편화돼 있다. 수면 마취는 마취과 의사가 하도록 별도로 의료 수가를 책정해놓는다. 우리나라는 모니터링 장비 없이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누구나 수면 마취를 할 수 있다. 우리가 마취돼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