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손'이다.
차두리(서울) 이근호(상주) 이천수(인천) 김정우(알 샤르자) 최태욱(은퇴)…, 부평고 코치(1997~1999년), 고려대 코치(2000~2001년), 부평고 감독(2002~2004년) 시절 길러낸 제자들이다. 월드컵은 그가 걸어온 길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필두로 매 대회 3명 이상의 제자를 배출했다. 그래도 늘 새롭다. 올시즌 울산 현대로 복귀한 임종헌 수석코치(47), 브라질월드컵은 더 특별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그래도 유독 눈에 밟히는 제자가 있다. 하대성(29·베이징 궈안)이다. 그만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 한 켠이 무겁다.
어린 하대성은 평탄한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축구 생사'의 갈림길에서 수도없이 고민하고 아파했다. "만약 그 때 축구를 그만뒀더라면…", 스승은 그 때의 악몽을 지울 수 없다.
▶키 때문에 좌절한 제자
첫 인상은 강렬했다. 부평고 코치 시절 인천 만수북초등학교에 다니던 하대성을 그라운드에서 만났다. "처음 경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볼만 잡으면 기가막히게 벗기고 들어가더라. 패스를 주고 나가고하는 장면은 성인 선수 못지 않았다. 차범근 축구대상도 받았는데…." 그러나 큰 기대는 이내 처참하게 무너졌다.
고려대 코치 시절 하대성의 소식이 들렸다. 워낙 작은 선수였는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키가 안컸다. 1m60이 안됐다. 임 코치는 "공은 잘 찼지만 너무 작아 힘이 없었다. 주위에서 축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라고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했다.
다행히 부평고 1학년 때 성장했다. 20cm 넘게 컸다. 한 차례의 파고를 넘는 듯 했다. 하지만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커버려 축구 선수의 생명인 무릎에 이상이 왔다. 성장통이었다. 훈련을 못할 정도로 통증은 컸다. 그사이 임 코치는 부평고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대성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축구를 그만둘거라 생각했다. 주위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갖고 있는 기량이 너무 아까웠다. 몸을 불리고 쉬면서 무릎을 치료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성이와 면담하면서 무리하면 선수 생명이 끝난다고 얘기했다. 쉬면서 재활하라고 병원을 소개해줬다. 1년을 재활시키며 기다렸다. 운동을 할 수 없었던 대성이도 그때 무지 고생했다."
▶충돌, 품은 떠나지 않았다
하대성은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가 돼서야 제자리를 잡았다. 임 코치는 1학기까지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마지막 전국대회인 전국체전에서 팀의 주축으로 출격, 절정의 기량을 뽐내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전 경기 선발출전하며 최다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너무 늦게 핀 꽃이었다.
갈 곳이 없었다. 임 코치는 차선을 제시했다. 호남대 카드를 꺼내들었다. "호남대에서 강력하게 원했고 2년만 뛰면 프로로 보내준다고 약속했다. 잔디 구장, 웨이트 시설 등 훈련 조건도 최고였다." 그러나 하대성은 고개를 저었다. 재수를 해서라도 더 좋은 데 가겠다고 했다. 충돌이었다.
그사이 변화가 있었다. 임 코치는 울산 현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안타까운 제자'를 지울 수 없었다. 당시 김정남 감독을 설득, 동계전지훈련 기간 중 하대성을 테스트 받게 했다. 합격이었다. "그 때 섭섭한 감정이 모두 풀렸던 것 같다. 만약 1년을 놀았다면 오늘의 하대성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계약금도 받고 아주 좋은 조건에 입단했다."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고질인 무릎 통증이 재발했고, 울산에서 '정리 대상'에 올랐다. 하대성은 임 코치의 추천으로 대구로 이적했다. 대구 이적 후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전북을 거친 그는 2010년 FC서울에 둥지를 틀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는 올시즌 이적료 180만달러(약 19억원)에 베이징 궈안으로 이적했다.
▶대성아 "또 기다리자"
일찍 주목받았지만 꽃망울을 터트리지 못했다. 좌절과 방황의 연속이었지만 단 한 번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결국 빛을 봤다. 만 29세인 하대성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최종엔트리에 승선했다. "대성이는 기술적인 감각이나 센스가 최고다. 볼을 잡으면 어떻게든 해결해 줄 수 있는 선수다. 부평고 시절 전국대회 3관왕을 했지만 (김)승용이와 (이)근호가 더 주목받았다. 대성이는 늦게 보여줬다. 그 때 감독 입장에서 잘 기다려줬던 것 같다. 물론 몸만 안 아팠더라면하는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그래도 축구선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굉장히 잘 한 판단이었다. 가장 안타까웠던 제자가 월드컵에 나가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대성이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환하게 웃었다.
하대성은 '대기만성형'이다. 홍명보호에서 현재의 위치는 조커다. 임 코치는 다시 주문했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준비를 얼마만큼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처음에는 조커로 나설 수 있지만 주전 자리도 꿰찰 수 있다. 잘 기다리면서 기회를 포착해 꼭 한국 축구에 일조를 해줬으면 좋겠다. 축구에 대한 감각은 누구보다 좋으니 당황하지 않으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의 눈물을 잊을 수 없는 스승은 또 한 번의 대반전을 기도하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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