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125㎡(약 38평) 아파트. 현관 쪽에 있는 10㎡(약 3평) 넓이 방은 여기저기 널린 옷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2㎡(약 3.7평) 규모의 이 집 주방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지. 김영현(43·화가)씨가 4년 전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화실에 있던 짐까지 들여와 기존 살림과 뒤섞어 놓았더니 집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김씨는 혼자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정리 전문가'인 윤선현(38)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는 이날 옷방과 주방을 보더니 "정리 컨설턴트 다섯 명이 3시간 이상 정리해야 할 분량"이라고 견적을 냈다.

◇아직은 낯선 직업 '정리 컨설턴트'

집이나 사무실 공간의 정리정돈도 이제 전문가의 손에 맡기는 시대가 됐다. '정리 컨설턴트'란 미국·일본에선 흔한 직업이지만, '정리정돈'을 돈 주고 남에게 맡긴다는 개념은 아직 우리에겐 낯설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가사 도우미 업체에서 '수납(受納) 서비스'로 시작된 '정리 산업'은 점차 확산되는 추세. 올해 정부의 '신직업 육성 추진계획' 대상인 41개 직업군에도 '주변환경정리전문가'가 포함됐다. 현재 국내에는 한국정리수납협회, 한국정리정돈협회 등 다양한 '정리' 관련 협회가 있다. 정경자(47) 한국정리수납협회장은 "프리랜서가 많아 정확한 통계를 내긴 어렵지만 '수납 전문가'만 수백 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리 관련 서적도 인기다. 윤선현 대표가 2012년 3월 낸 '하루 15분 정리의 힘'(위즈덤하우스)은 지금까지 20만부가량 팔렸다. 윤 대표는 이에 힘입어 최근 인간관계 정리를 주제로 한 '관계 정리가 힘이다'(위즈덤하우스)도 냈다. 일본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가 쓴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더난출판사)도 2012년 4월 출간 이후 지금까지 약 10만부 판매됐다. 미국 정리 전문가 캐런 킹스턴의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도솔)도 2001년 첫 번역 출간 이래 개정판까지 나오며 30만부가 팔린 스테디셀러다.

어떤 사람들이 '정리' 의뢰하나

전문가의 집 정리 비용은 집의 크기와 어지른 정도에 따라 천차만별. 베리굿정리컨설팅은 하루에 마무리한다는 전제하에 방 하나당 15만~30만원을 받는다. 컨설턴트 3~4명이 동시에 투입된다. 정리정돈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간혹 "눈의 광명보다는 집의 광명을 찾고 싶다"면서 라식수술 받으려고 모은 적금을 깨서 오는 고객도 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남에게 지저분한 집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망설이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서비스를 의뢰할 땐 '이렇게 어질러 놓고 살다간 큰일 나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됐을 때다.

윤 대표는 "아기가 태어나거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새 방이 필요하다거나 해서 '변화'가 간절한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정리 컨설턴트 정길홍(43) 바올공간컨설팅연구소장은 "정리정돈 문제로 가족 간의 불화가 생겨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집이 정리되면 가족 관계도 좋아지더라"고 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김영현씨의 집 옷방에서 윤선현 베리굿정리컨설팅 대표(사진 위)가 직원들과 짐을 정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방을 정리한 모습.

◇정리 잘하려면 '버려라'

서울 여의도의 김영현씨 집. 정리 컨설턴트가 아수라장이 된 방을 정리하기 시작한 지 두 시간쯤 지나자 옷방에 숨 쉴 틈이 생겼다. 정리 컨설턴트 두 명이 안 입는 옷가지와 옷걸이를 챙겨 방 밖으로 '배출'했다.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 윤 대표는 "정리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버리지 못한다는 거다. 물건에 집착하며 추억이 많다. 우리는 고객이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왕창 꺼내주고 '고객님 몸매는 77사이즈인데, 이 옷은 55사이즈라 안 맞아요. 버리세요'라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주며 버리는 걸 돕는다"고 했다.

정리 시작 세 시간 경과. 마무리 단계다. 옷방을 정리하던 컨설턴트 현정미(44)씨가 김씨에게 조언했다. "옷을 개지 마세요. 정리 못하시면 그냥 거세요. 그래야 눈에 잘 띄고 버리기도 좋죠. 정리 못하는 사람은 옷을 개서 넣어놓으면 절대 다시 못 찾아요." 현정미씨는 옷걸이에 니트는 니트대로, 블라우스는 블라우스대로 정리해 색깔을 맞춰 가지런히 걸었다.

정리의 '마법'?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의 저자 캐런 킹스턴은 "집 안의 잡동사니를 버리면 몸과 마음이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 차면서 좋은 운을 불러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 곤도 마리에도 "정리를 하면서 물건에 대해 설레는 감정을 되살리면 많은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인생이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정리정돈을 하는 것만으로도 운이 바뀔까? 일산에서 영어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윤현주(53)씨는 "그렇다"고 했다. 정리정돈에 서툰 윤씨는 2011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학원 사무실을 정리했다. 쌓여 있던 시험지, 교과서, 서류 등을 몽땅 버렸다. 그는 "정리를 하고 나니 새로운 에너지가 쌓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렸더니 그 에너지를 새로운 일에 쓸 수 있어서 그런지 일도 더 빨리하고 성과도 커졌다"고 말했다.

12년 넘게 살던 집을 최근 '정리정돈'했다는 서승현(44·학습지 교사)씨도 '정리의 마법'을 믿는다. 그는 "정리를 하고 났더니 스트레스 지수가 확 떨어졌다.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불면증이 사라지고 체중도 줄었다"고 했다. 또 "집을 정리했다는 얘길 듣고 친구가 내가 갖고 싶었던 물건을 선물하기도 했다. 어찌 된 일인지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연락도 오더라. 뒤죽박죽인 주변을 정리했더니 인생도 깔끔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정경자 한국정리수납협회장은 "주변이 깨끗해지니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따라서 샘솟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