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 기자] 조여정이 새 모습이 즐겁다. 동안 외모에 러블리한 매력, 거기에 최근 성숙한 이미지를 더한 조여정은 바쁜 영화 촬영 스케줄과 피곤함에 잠긴 목에도 생기가 넘쳤다. 그 만큼 주위의 칭찬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촬영장에 있어서 반응을 잘 모르는데 이렇게 나와봐야 분위기를 안다"라며 웃어보였다.
영화 '인간중독'(김대우 감독, 14일 개봉)은 결코 만나서는 안될 두 남녀의 진하고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 극 중 조여정은 남편을 승진시키자 하는 야욕에 불타면서도 정작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숙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인형같은 복고풍 의상에 날카로운 안경은 어딘가 이질적이면서도 신경질적이다. 수다스러운 구석이 많아 종일 입을 쉬지 않는 숙진은 영화 속에서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뺏기에는 충분하다.
"분량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더라"고 말하자 조여정은 "그런 말 조차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내 역할은 진평(송승헌)과 숙진이 얼마나 온도가 맞지 않는 부부인지 보여주고, 진평인가 얼마나 마음 붙일 때가 없는지, 그렇기에 왜 가흔(임지연)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나는 그런 생각이 안 들더라. 숙진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라고 말했다.
"커플은 서로 쿵짝이 맞아야 하잖아요. 차라리 숙진이에게는 가흔의 남편인 우진(온주완)이가 잘 맞을 거예요. 진평이에게 말 많고 자기 위주의 사랑만 하는(사랑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숙진이가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말 끝에 '이게 다 당신 때문에 이러는거다'라고 하면 제가 남자라도 참.."
조여정은 숙진을 연민하지 않았다. 가흔에게 하는 따뜻해보이는 행동에도 '장군의 부인으로서의 만들어진 태도'라며 "숙진이는 진짜 사랑을 안 해 봐서 그게 사랑인 줄 아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나름의 귀염성이 있다"라고 말하자 "어떤 시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알겠다. 그런데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지 않나"라고 소곤소곤 잘라 말했다. 명확하다.
어떻게 이 작품을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아무리 전작 '방자전'에서 김대우 감독의 뮤즈가 됐었다고 해도, 이 숙진 캐릭터는 조여정에게는 너무 의외였던 것이다.
"저 역시 의외였죠. '아니 날 어떻게 만들어주시려고 그러지?'란 생각이 가득했어요. 지금까지 보여준 조여정, 대중이 모르는 조여정을 꺼내줄 수 있게 해 주고 싶다, 그렇게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스윗함이나 러블리함 보다는 말투나 소리에 '아줌마스러움'을 담고, 안경도 권해주셨죠. 좀 더 이면이 있는 눈동자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캐릭터를 잘 잡아 주신거죠."
'대중이 잘 모르는 조여정'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해달라고 주문했다.
"음..보이는 것보다 많이 웃겨요. 웃기도 잘 하고요. 흉내내는 것도 좋아하죠. (스스로 유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 어느 정도는? 하하. 특히 힘든 일이나 미운 사람이 있으면 유머로 승화시키는 편이에요. 잘못을 유머로 풀면 화도 가라앉고 그렇더라고요. 피크닉 신 같은 부분에서도 감독님이 연기할 부분을 열어주셔서 자연스럽게 유머를 담은 것 같아요. 내가 해 놓고도 '저 여자 어떻게. 뭐야. 너무 웃겨' 이랬어요."
영화 속에서 조여정이 이끄는 부분은 관사에서의 계급, 거기서 파생되는 인간 관계다. 이 부분은 진평-가흔의 사랑 못지 않게 영화 속 큰 재미다. 조여정과 배우 전혜진이 이끄는 이른바 '김치신'을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남편을 '북돋아주는' 송승헌과의 베드신에서는 극장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한다. 살짝 부끄러운 듯 미소지으면서도 또박또박 이어지는 설명.
"제가 물론 아가씨라서 잘 모르는 부분이 있겠지만, 최대한 숙진이에 대해 상상하면서 내가 아는 아줌마스러운 말투를 구사했어요. 아이를 갖고 싶은 말 많은 여자. 어떤 순간에도 말을 쉼 없이 하고 떠들지 않을까 생각해죠. 남편이 정말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했어요. 남편을 질리게 하고 싶었죠. 그게 숙진이 역할이었고요."
만약 남편이나 애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상황이, 그러서는 안 되겠지만 실제로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조여정은 주저없이 "내가 숙진이면 놓아주겠죠. 그래야 맞고요. 어떡하겠어요 사랑인데"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을 탓하기 전에 '나한테 문제를 뭐였지?'라며 제 문제를 찾아 볼 것 같아요. 내가 어쨌길래 이렇게 됐을까. 원인에 대해 생각을 해야겠죠. 친구 사이든 연인 사이든 '저 친구가 왜 저러지. 내가 원인 제공을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먼저 하는 편이에요."
항상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욕망의 대상이 됐던 그녀. 처음으로 사랑 받지 못하는 역할을 맡았다. 종가흔 역이 탐나지는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여배우라면 누구라도 해 보고 싶은 역할일 거다. 가흔이도 임지연도 진짜 너무 매력있다. 시나리오를 글로 읽고 과연 가흔이를 누가 연기할까? 상상했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을 그려봤다. 그런데 정말 한 번도 전에 보지 못한 신비로운 친구가 실제로 그걸 하게 됐다"라고 솔직하게 대답하며 임지연의 오묘한 매력에 대해 극찬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진평-가흔처럼 '죽을 만큼' 사랑해 본적이 있나요?" "있죠. 사랑을 받아봤고 그 만큼 사랑도 해 봤고. 왜 아, '내가 전에 한 건 사랑이 아니였구나 이게 진짜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의 꿈이기도 하겠죠. 미용실 신에서도 여자들이 '저런 사랑 받아보고 싶다', '정말 사는 것 처럼 산다'라고 하잖아요. 전 진평-가흔 바라기에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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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