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간중독'(김대우 감독)은 일면 임지연의 '인간중독'이라고 할 만 하다. 그 만큼 영화는 임지연이 연기한 종가흔 캐릭터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인간중독'은 결코 만나서는 안될 두 남녀의 진하고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 극 중 남편의 상사, 그것도 유부남인 남자를 치명적인 사랑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여자가 종가흔이다. 혜성같이 나타난 신예 임지연은 마스크에서부터 혼을 빼놓는 오묘한 분위기로 최적의 캐스팅이라고 할 만한 비주얼을 보여준다.
그런데 관람 후기를 보면 이 종가흔을 두고 벌어지는 흥미로운 현상을 볼 수 있다. 관객들 사이에서는 영화 속 임지연, 정확히 말해 임지연을 연기한 종가흔 캐릭터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 종가흔이 애초부터 왜 그랬냐부터, 과연 이 여자가 판타지의 투영인지 현실성이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여러 얘기가 오간다.
임지연의 한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에 본 적 없는 마스크처럼, 종가흔 역시 오묘하고 애매하기 때문이다.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교태가 심하고, 잡힐 것 같으면 달아나고 멀리하고자 하면 훅 다가온다. 여우일까 천사일까. 혹은 천사의 얼굴을 한 악녀일까.
영화 속 종가흔이 김진평(송승헌)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심상치가 않다.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느릿느릿 천천히, 쉽게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톤으로 상대방을 휘어잡는 대사를 하는 그는 몽환적이고 어떻게 보면 추상적이기까지 하다.
목숨이 달린 위급한 상황에서 다소 아무렇지 않은 듯 잃어버린 귀고리를 찾는다는지, 거의 처음 본 남자에게 팔이 다쳤으니 음식을 먹여달라고 하는 행동 등에서는 남자를 휘어잡는 '여우'라고 생각되지만, 다른 시선에서는 때묻지 않은 순수한 여성으로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종가흔이 김진평에게 하는 대사나 행동은 과연 이 여자에게 어떤 의도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정도다. 종가흔의 남자를 꼼짝 못하게 하는 오묘한 뉘앙스의 행동이 과연 옳냐 그르냐부터 이 인물이 철저히 판타지인지 아니면 현실성에 있는지에 대한 얘기도 오간다. 이 부분에서 남녀 관객 반응의 차이도 눈에 띈다.
영화 속에서 사랑을 하는 송승헌과 임지연이 아닌, 이들 주위에서 사랑의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는 남녀 온주완과 조여정은 이 인물을 어떻게 생각할까.
종가흔에 별 애정이 없으면서 야망에 들끓는 남편 경우진 역을 맡은 온주완은 이른바 '종가흔의 흘림'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는 "여자가 무심코하는 작은 것들에 남자들이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다. 극 중 진평도 가흔의 그런 점에 끌린 것일 것"이라며 "사실 여자들이 마음을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미묘하고 작은 부분이 남자들을 미치게 할 때가 있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진평의 아내로,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숙진 역을 맡은 배우 조여정의 설명은 보다 종가흔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도운다. 그는 "종가흔은 서툴러서 밀당을 오히려 못하는 순수한 여자다. 남녀 관계에 있어 쥐락펴락을 잘 하는 여자였으면 가흔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처음 사랑을 해 보고, 그런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기에 훅 들어가고 나오는 거다. 너무 순수하기에 '사랑은 하는데 나 어떡해'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오히려 여우였으면 좀 더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명한 것은 종가흔이 흥미로운 캐릭터라는 것이다. 어떻게보면 베드신보다 더. 이 많은 얘기, 호불호가 나뉠 정도로 최근 나온 여자 캐릭터 중 인상을 남기는 손에 꼽히는 인물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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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독'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