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블록버스터 '고질라'(Godzilla ·가렛 에드워즈 감독)가 상륙했습니다. 일본 토호 스튜디오가 1954년 탄생시킨 괴수(怪獸)영화 '고지라'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판은 1998년에도 나왔습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1998년작 '고질라'는 할리우드의 물량과 디지털 영상 수준을 보여 줬을 뿐입니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할리우드는 이 괴수를 또 불러냈지만, 16년 전의 시행착오에서 많이 배우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고질라'는 대작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좀 맥빠지는 대작입니다. 괴수를 영화에 끌어들였으면 괴수영화다운 재미를 제대로 살렸어야 합니다.사실 일본산 '고지라'나, 이를 모방한 한국영화 '대괴수 용가리'(1967년 작)같은 영화들의 존재 이유란 우리들을 잠시 끔찍한 백일몽 속으로 빠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온한 일상과 목숨이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으로 짓밟히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울까 하는 잠재된 불안의 뇌관을 건드려 줘야 관객에게 참맛을 안길 수 있다고 봅니다. 새로운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대도시에 출현해 모든 인간을 충격에 빠뜨리는 고질라. 이번 '고질라'에서 고질라는 또다른 괴수인 무토의 적수가 되어 자기들끼리 치고받는다.
'고질라'의 한 장면. 거대 괴수 소동으로 대도시 심장부가 한 순간에 폐허로 변했다.

할리우드 '고질라'는 관객을 새로움으로 충격하는 대신, 대규모 물량으로 충격하려 합니다. 좀더 멋진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인지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참여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돈도 들어갔습니다. 영화 속 고질라는 1998년보다 더 커져서 키가 106m. 30층 빌딩만큼 큽니다.

괴물 한 마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겼는지, 이번에는 인간들의 핵 경쟁에서 흘러나온 방사능 물질을 먹고 자란 '무토'라는 괴수가 2마리나 등장합니다. 3마리의 초대형 괴수들이 나오는 셈이죠. 특이하게도 이번엔 방사능 먹은 괴물 무토들과 고질라가 맞붙습니다. 엄청난 괴수들이 서로 치고받으며 거대 도시를 폐허로 뭉개버립니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이야기가 됩니다. 괴수들이 저희들끼리 싸우는 걸 인간이 지켜보게 되는 이상한 형국으로 빠집니다.

고질라는 무토의 난동을 잠재울 자연 스스로의 정화능력을 감당하는 긍정적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고질라는 악한이 아니라 인간의 도시를 구한 '킹 오브 몬스터즈(괴수들의 왕)'로 평가까지 받습니다. '무시무시하고 나쁜' 괴수에 대한 공포심과 적개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패닉에 빠진 극중 군중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일이 별로 없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속에서 수십 대의 전투기가 날고, 땅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고, 군함이 함포를 쏴 대도 극장 객석의 의자는 울리는데 관객들 가슴을 울리기에는 좀 역부족입니다. 괴수들이 미국의 라스 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같은 대도시를 누비며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칩니다. 재앙의 스케일을 크게 키워놓다 보니 전 지구적 전쟁이 되어 버렸습니다. 괴수영화라기보다는 겉만 요란한 범작 재난 영화나 전쟁 영화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고질라'에서는 대재앙 속에서 여러 인물들이 인류를 지키기 위해 몸사리지 않는다. 그 한복판에 해군중위 포드(애런 존슨)가 있다.
1954년 일본 토호스튜디오의 '고지라'로부터 오늘의 할리우드 '고질라'에 이르기까지 괴수 고질라 크기가 점차 커졌음을 보여주는 그림. '문제는 크기(Size matters)'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2014년작 '고질라'를 보면 괴수의 크기가 커졌다고 영화 보는 즐거움의 크기가 커졌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영화 속에서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거의 대부분은 무장한 군인들이거나 사태에 대한 대응을 지휘하는 전문가들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찢기고 할퀴는 모습을 이상할 만큼 절제하고 있습니다. 귀청 따갑게 폭음과 파열음이 난무하지만 맥박 수 올라갈 일도, 손에 땀을 쥘 일도 별로 없는 듯합니다. '

'고질라'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 중 하나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93년작 '쥬라기 공원'입니다. 얼른 보면 괴물에게 인간이 당하는 비슷한 구도 같지만 2014년의 '고질라'는 재미 면에서 20여년 전의 공룡영화 '쥬라기 공원'을 못 따라갑니다. 수준 차가 있습니다. '쥬라기 공원' 중 빗 속에서 어린아이들끼리 갇힌 SUV차량을 티라노 사우러스가 뒤집어 엎어 절벽 끝으로 아슬하슬하게 밀어부치는 대목이나, 벨로시 랩터와 아이들이 키친에서 벌이는 목숨 건 공포의 숨바꼭질 같은 장면들의 스릴 같은 게 '고질라'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기억에 남을 장면이나 에피소드를 건지기 어렵다는 건 '고질라'의 아쉬움입니다. 한국영화 '대괴수 용가리'는사람이 괴수 옷 입고 들어가 땀 뻘뻘 흘리며 연기하며 서툰 솜씨로 만든 영화였지만,하다 못해 괴수가 덮치자 세상 끝이라고 생각한 시민들이 통닭 구이집에 몰려가 "죽기 전에 실컷 배나 채우자"며 미친듯 닭다리를 뜯는, 우습고 서글픈 장면이라도 남겼는데 말입니다.

일본 괴수 이름'고지라'와 미국 이름 '갓질라'의 차이 만큼, 할리우드 '고질라'는 괴수영화다운 완성도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할리우드가 일본 '고지라'를 리메이크 할 때 자신들의 차별성을 설명한 말은 '문제는 크기다(Size Does Matter)'라는 문구였습니다. 잘못된 방향입니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관객을 쥐었다 풀었다 하는 상상력의 수준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대괴수 용가리'나 일본영화 '고지라'가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