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기아자동차의 ‘쏘렌토R’ 소유주인 김모씨는 차량 출발 전 앞 유리에 낀 성에를 제거하기 위해 열선 히터를 켰다. 가동 후 2분 정도 지나자 갑자기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앞 유리에 30cm 길이의 금이 갔다. 김씨는 “고속으로 운전 중에 금이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기아자동차(000270)의 중형 SUV '쏘렌토R' 일부 차량에서 앞 유리가 열선 과열로 인해 파손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아차는 무상으로 교환을 해주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정식 '리콜'을 하지 않고 '무상교환'을 실시하는 것은 일종의 꼼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13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기아차는 지난 2009년 4월 3일부터 2012년 11월 15일까지 생산한 쏘렌토R 차량 12만7438대 중 일부 차량이 열선 과열로 앞 유리가 파손되는 현상이 발생하며, 이 차들에 대해 무상 수리를 해주기로 결정했다.
문제가 된 쏘렌토R은 앞 유리 열선 단자부에 물이 들어갈 경우 유리와 열선을 덮은 황 성분이 열선의 은(Ag) 성분과 반응하며 열선 표면이 손상되고, 이로 인해 과열 현상이 발생해 앞 유리가 파손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겨울철 결로 현상 등으로 앞 유리 하단부에 수분이 누적되거나 선팅 부착 과정 등에서 수분이 열선 단자부에 유입됐을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쏘렌토R 차량의 앞 유리가 파손됐다는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상황이다. 또 앞 유리를 모두 교체하기 위한 비용 등을 문의하는 글도 많다.
기아차는 이 같은 문제를 시정하는 것이 좋겠다는 한국소비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파손된 차량에 대해 13일부터 무상교환을 시작했다. 또 품질개선에 나설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기아차 관계자는 “모든 차의 유리가 깨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금이 가는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서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고 판단해 리콜이 아닌 무상수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해당 사안이 운전자 안전에 큰 영향을 줄 수도 있다며 무상교환이 아닌 전면 리콜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리콜은 해당 기간에 생산된 모든 차량의 문제를 수리해주는 것이고 무상수리는 문제가 생기는 차량에 대해서만 수리를 해주는 것”이라며 “비용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꼼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리콜을 하면 자비를 들여 이미 수리를 끝낸 소비자 역시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무상수리의 경우에는 제조사가 보상 의무가 없다.
김 교수는 “같은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해당 부분에 결함이 있다는 의미”라며 “고속 주행 중 해당 문제가 발생할 경우 안전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종훈 한국자동차품질연합 대표도 리콜을 해야 할 사안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김 대표는 “자동차 관리법 31조는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등의 결함이 있는 경우 제작 결함을 시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기준이 애매모호해 소비자보다는 업체 측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며 “이번 결함의 경우 뒷 유리가 아닌 앞 유리라는 점에서 운전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안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 시점에, 국토교통부가 자동차 안전 관리감독을 안이하게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이미 피해자가 여럿 발생해 무상수리가 결정된 상황인데도, 해당 사안이 리콜 대상인지를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무상수리는 소비자원이 결정한 것”이라며 “국토부 산하기관과 소비자원이 이런 문제는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좀 더 검토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