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현지지도’하는 모습을 보면 수행하는 당·군·정 고위간부들이 대부분 손에 종이 수첩을 들고 등장한다. 지난해 12월 장성택 숙청 이후 최고실세로 부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근 차수(次帥)로 초고속 승진한 황병서 노동당 제1부부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모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손에 수첩을 들고 수행하다가 김정은이 얘기를 하는 장면에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하면서 수첩에 열심히 필기한다. 심지어 김정은이 농담하는 듯 활짝 웃는 장면에서도 진지하게 수첩에 필기하는 간부의 모습도 포착된다.
이와 관련, 영국 BBC의 블로그사이트인 ‘BBC 매거진 모니터’는 24일(현지 시각) “김정은이 할아버지인 김일성의 현지지도 방식을 따라 하면서 권력과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한반도 전문가인 제임스 그레이슨 교수는 “소위 지도자의 권력과 지식, 지혜, 관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김일성이 1950년대부터 시작한 ‘현장 지도’는 위대한 지도자가 자애롭게 지도한다는 이미지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김일성과 비슷한 스타일이라면 매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지도’를 했을 것으로 이 매체는 추정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일성은 1976년 현장 지도에서 트럭 작업을 보면서 트럭의 적재함이 마력에 비해 작아 보인다며 크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에 따라 트럭 적재함은 800㎏에서 2t으로 늘어났는데 이 때문에 트럭 50대가 하던 일을 20대가 하게 됐다고 한다.
그레이슨 교수는 “북한에서도 태블릿PC를 사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종이 수첩을 선호하고 있다”며 “이 장면은 TV와 국영매체에 의해 보도되는데 현장에 있는 간부들이 김정은의 한 마디 한 마디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것을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건 정말 우스운 짓이다. 김정은이 다른 모든 분야에 대해 알 수도 없다”며 “다만, 주변에 있는 간부들이 김정은의 모든 얘기를 경청한다고 보여지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讯)은 BBC의 이 기사를 인용보도하면서 김정은의 현지지도 당시 여군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최근 군부대 방문 횟수가 급격히 늘었는데 지난달 7일 항공 및 반항공군 제2620군부대의 비행훈련 현지지도 당시 공개된 사진을 보면 환하게 웃고 있는 김정은의 양팔을 부여잡고 김정은을 둘러싼 여군들은 모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있다. 마치 남성 아이돌 스타에 열광하는 ‘오빠 부대’ 중에서도 아주 극성스런 팬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