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개막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던 지난 2010년 5월28일(한국시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가나대표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강호 첼시의 중원 사령관 마이클 에시앙(32)의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는 것이다.

2009년 12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허벅지 뒷근육을 다쳤던 에시앙은 2010년 1월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코트디부아르전 경기 후반에 출전하면서 컨디션 회복을 알렸다. 하지만 이틀 뒤 훈련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시즌아웃과 함께 남아공에도 갈 수 없었다.

2000년 SC바스티아(프랑스)를 통해 프로 무대에 데뷔한 에시앙은 이후 3시즌 동안 수비수로 65경기에 출전, 11골을 터뜨렸다. 2003년 이적료 780만 유로(약 112억원)에 당시 프랑스 리그앙 최강팀 올림피크 리옹에 합류한 그는 2005년 프랑스축구선수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차지하고,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 플레이어 후보로도 선정됐다.

2005~2006시즌 첼시로 이적한 그는 '스타군단' 첼시에서 단기간에 주전자리를 꿰차며 스타덤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그는 2006독일월드컵에서 조국 가나를 처음 본선에 진출시킨 데 이어 16강으로까지 이끌었다.

만 28세로 최전성기였던 2010년 남아공에서 월드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상실한 그는 이후 거듭된 부상에 울어야 했다.

소속팀에서도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게 됐고 자신을 빅리그로 발탁한 '은사' 조제 무리뉴(51) 감독이 2010~2011시즌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떠나자 더욱 위축돼 벤치 멤버로 전락하고 말았다.

경기력 회복을 위해 에시앙과 첼시 구단은 결단을 내렸다. 2012~2013시즌에 에시앙은 무리뉴 감독이 이끌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로 임대를 떠났다. 프리메라리가 최강 레알 마드리드에서 에시앙은 비록 1.5군에 속하기는 했지만, 첼시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부활 가능성을 보였다.

무리뉴 감독이 2013~2014시즌 첼시로 복귀할 때 에시앙도 함께 돌아오면서 제2의 전성기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제는 나이와 체력이 그를 허물어뜨렸다.

전성기 시절 아프리카 선수 특유의 유연성과 스피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바탕으로 공수를 오가며 펼쳐 보였던 파워 넘치는 드리블, 강력한 슛, 높은 골 결정력, 물러설 줄 모르는 몸싸움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전성기를 허비해 버리고 녹슬고 쇠약해진 그는 올 시즌 상반기에 5회 출전(선발 2회)에 그치는 등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됐다.

축구 인생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좀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에시앙은 지난 1월25일 이적시장 막바지에 전통의 명문 AC밀란(이탈리아)으로 향했다. 무리뉴 감독과 첼시는 마지막 불꽃을 피우겠다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 이적료 없이 보내줬다.

에시앙은 새 둥지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등에 꾸준히 선발 또는 교체로 출전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이보다도, 체력보다도 더 강인하고 싱싱한 '정신'이 있다.

세계 최강의 프로축구단 바이에른 뮌헨(독일) 선수들이 주축이 된 우승후보 독일(FIFA랭킹 2위)·'득점머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가 선봉에 서는 포르투갈(랭킹 3위)·'북미 축구제왕' 미국(랭킹 13위) 등과 함께 G조에 편성된 가나(랭킹 38위)가 독일(16강)이나 남아공(8강) 월드컵에서와 같은 대기록을 작성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래, 공은 둥글지'라면서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된다면 바로 전성기 시절 그대로 에시앙의 몸 속에 타임슬립한 그 정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