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중·일 간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분쟁 조정을 위해 일본에 이어 중국을 방문한 리언 패네타 당시 미 국방장관은 "미국은 동중국해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 뿐이며, 영토 분쟁에 관해서는 한쪽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 7일 일본을 거쳐 중국에 도착한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중·일이 충돌하면 미국은 일본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입장이 1년 7개월 만에 '중립'에서 '일본 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미·중·일 외교 전문가와 언론은 헤이글 장관이 중국 면전에서 일본을 껴안은 것에 대해 "크림반도 사태 이후 동요하는 일본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미국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자, 일본에선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도 크림반도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쿄(東京)신문은 "중국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자극받아 힘에 의한 현상(現狀) 변경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중국이 무력을 동원해도 미국이 크림반도 사태 때처럼 속수무책인 상황을 가장 우려한다는 분석이다.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는 "크림반도 사태 이후 미국이 동·남중국해 충돌에 대해 개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일본뿐 아니라 동남아 국가에도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이웃 나라의 주요 영토 분쟁 정리 그래픽

최근 뉴욕타임스(NYT)도 "일본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존을 약속해놓고 러시아 합병에 손을 쓰지 못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당국자는 미국 인사를 만날 때마다 "일본이 중국이나 북한의 공격을 받아도 미국이 우크라이나처럼 대응할 것이냐"고 물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미국의 확답을 들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 당한 미국이 러시아보다 강한 중국과 대적할 힘이 있는지 의심하는 분위기가 기사에 반영됐다.

미국 역시 초조감은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동부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역'으로 사실상 인정한 미국이 일본을 앞세워 영향력을 행사해온 동아시아를 '중국 영역'으로 넘겨줄 경우 세계 패권국의 지위가 3개로 분할되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헤이글 장관이 중국과 영토 분쟁 중인 일본과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중국은 크림반도 사태에서 미국의 약점을 읽은 상황이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중국군은 미·중 국방장관 회담이 열린 8일 댜오위다오 해역을 관할하는 동해함대 잠수함 부대의 훈련 사진 17장을 공개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이날 "일본을 돕겠다"는 헤이글 발언을 겨냥해 "미국은 (2차 대전의) 진주만 전철이나 밟지 마라"고 밝혔다. 미국이 일본을 싸고 돌지만 일본은 결국 미국에 칼을 겨눌 나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