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 기자] 배우 이성민을 이제 스크린 가득 볼 수 있다. 드라마 '골든 타임', '미스코리아'로 여심을 녹이며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가 이젠 관객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성민은 영화 '방황하는 칼날'로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극 중 살인자가 된 피해자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 억관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영화에 대해 "묵직한 힘이 있는, 장난 안 친 거 같은 느낌이 좋았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방황하는 칼날'은 덤덤한 시선과 과장되지 않은 톤으로 그려낸 미덕이 있는 영화다.
영화 주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하지만 "시나리오는 아버지 상현(정재영)의 이야기고, 촬영하면서 형사 억관의 시점이 생기면서 이렇게 왔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재영은 "'방황하는 칼날'의 '방황'은 사실 억관의 감정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연출을 맡은 이정호 감독이 이성민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전해진 바다. 하지만 이에 이성민은 "허투루 말할 사람은 아니지만, 에이 정말 그랬겠냐"라며 허허 웃어보였다. 하지만 많은 고민 없이 감독과 전화 통화와 문자를 하면서 작품을 선택했고, 또 무엇보다 정재영과 함께 연기한다는 말을 듣고 '혹' 했다고.
사실 정재영과 '크로스 캐스팅'도 가능할 법 했다. 정재영이 억관을, 이성민이 반대로 상현을 연기한다고 하더라도 어울리는 조합이다.
"잠깐 상현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진지하게 '내가 해 보면 어떨까?' 란 생각은 크게 안 해봤어요. 상현의 어떤 신을 보면 '저럴 땐 어떤 기분일까'라고 상상하긴 했죠. 아, 그런데 그 감정이 힘들더라고요. 연기를 하다 보면 상상하고 추측하고 그 상황에 나를 갖다 놓고 집중해야하는데, 내가 상현이가 된다면 정말 힘들 거 같아요."
만약, 정말 만약에 영화가 현실이라면 이성민은 상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의 딸을 해친 아이가 히히덕거리고 있는 모습을 본 아버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단순히 '이성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신고 전화를 할 수 있을까?
"나 역시도 (상현처럼)그랬을 것 같아요. 내가 여차여차 그 아이를 설득해서 자수를 유도해야지,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지,란 생각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요. 상현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는 시점인데, 그 순간 법의심판을 받기 위해 너 잠깐 있어, 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사람이 있을까요? 나 역시도 물리적인 행동이 먼저 앞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 이성민은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영화의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인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라고도 말했다. "청소년들이 보고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한 번 더 깊게 생각하는 것의 중요함. 아무 생각없이 한 행동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 있냐는 것들에 대해서요. 소년법에 대한 딜레마, 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 여러 관점이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주연으로 올라 선 그에 대해 예전과 달라진 점을 묻자 "똑같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알아본다는 거? 변한 게 사실 없다"라면서도 "다만 영화를 하든 드라마, 연극를 하든 책임감이 예전보단 커지더라. 관심을 받게 되고, 관심의 대상이 되다 보니 더 신중해지고 잘 해야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라고 전했다. 인기에 따른 책임감이다.
그에게 "꽃중년으로 사랑받고 있다"란 말을 하자 "나를 규정하는 이미지, 어떤 것이 생긴 것 같다. 그것은 정말 축복받은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날부터 이성민이란 배우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 걸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대중에게 그런 이미지를 '부여'받은거죠. 예를 들어 누구나와 어울리는 배우, 악당인데 밉지 않은 이미지 같은 것들이요. 드라마 '골든 타임'을 통해서는 리더, 멘토 같은 이미지로도 봐 주시더라고요. 내가 의도치 않게 이런 이미지를 갖게끔 선택받아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실제로는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라고 덧붙였다. 평상시 그의 모습은 재미없고,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고,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캐릭터처럼 용기가 있지도 않다고. 촬영을 하지 않으면 평범한 동네 주민이란다.
그는 한 예로 의상을 들며 "실제로는 양복도 없다. 막 (입고)산다"라며 "주변에서 '제발 좀 그러지 말라'고 부끄럽다고 말한다. 지방에서 촬영하면 사람들이 다 스태프인 줄 안다. 이번에도 강원도 촬영을 하는데, 다 내가 강원도 주민인 줄 알더라. 중학생 딸을 데리러 가면 딸이 위아래로 보며 '이러고 왔어?라고 그런다"라며 웃어보였다.
정재영과도 그런 면이 잘 통해 좋았다고. 그는 정재영에 대해 "막 사는 지조있는 선비"라고 표현하며 "아주 곧고 강직한데 막 사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뚝심이 있고 곧다. 그런 지점이 있으니까 놀라울 정도다. 안 그런 척 하는데 심지가 강해 멋있다 남자가 봐도"라고 '영혼있는' 칭찬을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강원도 식당에 갔는데, 주인 아주머님 분이 사인을 받으러 오셨다. 멀리서부터 오시는 구나, 라고 생각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와 정재영 씨를 두고 감독님에게 가서 '배우시죠?'라고 물으며 사인을 받으려고 하시더라. 재영이랑 내가 배우라고 해도 안 믿으시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우리(배우)끼리도 '와~연예인 같다'라는 말을 쓴다"는 그는 이 날도 인터뷰를 위해 세련되게 차려입고 멋진 헤어스타일을 하고 사진 포즈를 취했다. 그러면서 "이 순간은 멘붕이다"라며 다시금 웃어보였다. 이런 매력있는 동네 아저씨가 어디있겠는가.
한편 '방황하는 칼날'은 '일본 미스터리 거장'으로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되어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의 가슴 시린 추격을 그린 드라마다.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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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