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찾아간 독일 동남부의 소도시 차이츠(Zeitz)는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건물 3개 가운데 1개꼴로 폐허가 돼 있었고, 상당수 상점은 언제부터 영업을 안 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의 글씨가 흐릿해져 있었다. 도시 중심(Zentrum)에는 젊은이들 대신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만 눈에 띄었다.
통일 전 차이츠는 동독 도시 가운데 손꼽힐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다. 차이츠는 150여년 전부터 '유모차의 도시'였다. 유럽 최대 규모의 유모차 생산업체인 체키바(Zekiwa)가 차이츠에 본사를 두고 있었다. 1970년대 체키바는 하루 평균 4000대의 유모차를 생산했고, 전 세계 20여개국에 수출하는 차이츠의 성장 동력이었다.
하지만 1980년 평균 2명이었던 동독의 출산율이 통일 이후 절반 수준으로 곤두박질치며, 체키바는 어려움을 겪기 시작해 1998년 2월 결국 파산했다. 한 기업이 체키바의 이름을 다시 사용하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은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체키바에 의존했던 도시 차이츠도 체키바와 운명을 같이했다. 1980년대 4만5000명이었던 차이츠의 인구는 40% 가까이 줄어 현재 2만9000명이다. 차이츠의 100년 전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다.
구 동독 지역 가운데 몰락한 도시는 차이츠뿐 아니다. 전통적인 신발 산업의 중심지로 통일 전 근로자가 4만8000여명이었던 작센-안할트주의 도시 바이센펠(Weißenfell)은 일자리의 약 96%가 사라져 지금은 근로자가 2000여명이 되지 않는다. 독일 IFO경제연구소 요아힘 라그니츠(Ragnitz) 부소장은 "통일을 전후해 오히려 몰락한 동독 도시가 적지 않다"며 "이 도시들은 새로운 산업 전략을 세워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드레스덴, 라이프치히와 달리 과거의 영광에 매달린 채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