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젊은 노동자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외과·내과 전문 과목을 수련하는 전공의 단체가 최근 의료 파업에 참여하면서 발표한 성명서 내용 일부다. 전공의들은 의사 면허를 딴 지 1~4년 된 젊은 의사들로, 병원에 속한 근로자이면서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생이기도 하다. 전공의가 오는 24일 예고된 의료 총파업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행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국 전공의는 1만7000여명이다.
전공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경제적으로 풍족한 직업을 가진 자라 하지만, 우리 일상을 보면 새벽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을 노동하고 하룻밤 당직비로 1만원을 받는다"며 "수련을 대가로 저임금으로 4년 동안 일하기로 계약한 노동자"라고 했다. 한마디로 자신들은 '88만원 세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의견은 분분하다. 공무원 김모(38)씨는 "주 100~144시간 근로는 경악할 만하다"며 "전공의를 노예 부리듯 부리는 병원의 운영 방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말에 일견 공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월급 140만원을 받는다는 비정규직 사원 황모(29)씨는 "전공의 월급이 200만~400만원 정도 된다고 들었는데 대체 왜 '88만원 세대'라는지 모르겠다"며 "저들은 실제 '88만원 세대'들을 조롱하는 '888만원 세대'"라고 비난했다. '의징징(의사+징징댄다)'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엄모(26)씨는 "파업과 상관없이 미래에 고소득을 보장받는 사람들이 저렇게 얘기하니 '의징징'이 따로 없다"며 "백 번 양보해 시급으로 환산해서 자기들이 '88만원 세대'라면, 진짜 미래가 불투명한 '88만원 세대'답게 미래 억대 연봉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대학병원 전공의 월급은 평균적으로 300만원 안팎이다. 외과·흉부외과 등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는 과는 수련 보조금을 추가로 받아 월급이 500만원을 넘는 곳도 있다. 송명제 전공의 비대위원장은 "우리가 미래에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지금의 열악한 수련 환경을 견뎌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그 가능성조차도 지금은 흔들리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공의협의회는 15일 비상 총회를 열고 의료 파업 공세를 이어갔다. 전공의가 100명 이상 근무하는 병원 70여곳 중 한 곳을 빼고 24일 파업에 전면 참여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여기에는 서울대·연세대·서울아산·삼성서울·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Big)5 대형 병원도 포함됐다. 이들은 "의사들의 투쟁을 깎아내리는 일부 선배 의사의 모습에 비탄을 금할 수 없다"며 개원가나 대학병원 교수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은 총회에 참석해 "전공의들이 총파업 참여 결정을 내렸어도 불안한 마음이 있겠지만, 끝까지 용기를 잃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 파업을 의사협회와 일부 선배 의사가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생업에 종사하는 개원가의 집단 휴진 참여율이 20%대에 그치고 대학병원 경영진이 의료 파업에 적극적이질 않자 의사협회가 전공의 파업을 정부 압박 수단으로 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계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전공의 파업으로 진료 기능이 마비될 것을 우려하는 것 자체가 낮은 의료수가를 피교육생인 전공의의 노동력으로 때워온 한국 대학병원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다'는 취지의 토론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전공의 근로여건 개선도 의료사고를 방지하는 환자 안전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