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저를 '장애인'이라 하지만, 당신들은 저를 '아들'이라 합니다. 남들은 저를 '안쓰럽다' 하지만, 당신들은 저를 '자랑스럽다' 합니다. 저의 눈이 돼주신 아버지, 어머니. 자랑스러운 아들이 대학을 졸업합니다."

오는 25일 성균관대 교육학과를 졸업하는 서주영(24)씨는 졸업을 맞아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서씨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몰랐습니다. 흐릿한 안개가 내 두 눈을 덮던 바로 그날, 당신들은 이미 나를 위한 눈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걸…."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선천성 녹내장을 앓다가 12세 때 갑작스러운 안압(眼壓) 상승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20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캠퍼스에서 졸업을 맞은 서주영(가운데)씨가 부모님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내견 ‘나비’는 2009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만나 대학생활 5년을 함께했다.

그는 실명(失明)을 '영원한 암흑'이라고 표현하며 "12세 소년이 감당하기 너무 힘겨운 아픔, 끝없는 나락으로 도망치고 싶은 제게 건네신 당신들의 손길엔 동정과 걱정이 아닌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나를 향한 수많은 세상의 '불가능'이라는 메시지와 싸워 오늘 '가능의 기적'을 이뤄낸 주인공은 바로 부모님"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9년 대학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땐 내 노력 덕분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밤낮으로 목이 쉬도록 문제지를 읽어주던 아버지, 8년간 매일 경기도 안양과 서울을 오가며 맹학교에 통학시킨 어머니의 정성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륜동 졸업식장에 모인 서씨 가족은 어떤 가족보다 행복해 보였다. 4년 동안 서씨와 함께 학교를 다닌 안내견 '나비'도 서씨의 발치에 앉아 졸업사진을 함께 찍었다. 서씨가 자신이 쓴 A4용지 3장 분량의 편지 내용을 얘기하자,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아버지 서태현(60)씨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이 정도로 컸구나, 정말 다 컸구나…"라며 울먹였다. 목이 메 겨우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나직이 말했다. 어머니 김미자(57)씨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네 엄마, 아빠니까 당연히 한 거야"라고 했다.

서씨는 편지 말미에 "24년간 부모님을 통해 봤던 세상, 너무 아름다웠어요. 이젠 부모님 아들이 얼마나 용기 있게 세상에 맞서는지 보여 드리고 싶어요. 늘 저의 그림자이셨던 부모님, 오늘만큼은 제 인생의 위대한 주연이 돼주세요"라고 썼다.

그는 현재 홀로 떠나는 유학을 준비 중이다. 부모님과 교정을 거닐던 그는 허공에 눈을 두고 "이제 졸업하면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 드릴 것"이라며 "늘 제게 매여 있던 부모님께 '자유'를 선물로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