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등에서 올 7월부터 금지되는 레이스 달린 속옷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옛 소련권 국가 3국이 합성섬유가 들어간 란제리의 판매를 금지하고 나서자 여성들이 거리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러시아는 건강을 위한 조치라고 말하는데, 해외 언론들은 인접한 유럽연합(EU) 등 외국 국가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영국의 AP통신과 온라인신문 텔레그래프 등은 17일(현지 시각) 이들 세 나라가 올 7월부터 면성분 함량이 6% 미만인 란제리 제품의 생산·수입·판매를 금지하는 규제안을 내놓자 이를 반대하는 여성들이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16일 여성 30여 명이 ‘속옷에 자유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3명이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레이스 달린 속옷을 펼쳐보이는 퍼포먼스를 펼쳤는데 경찰은 이들을 풍기문란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여성은 “조만간 입을 수 없는 레이스 속옷과의 이별을 기념하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벌금 60파운드(약 11만원)를 내고 풀려났습니다.

사실 이번 규제안이 처음 발표된 것은 2011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지역 내 업체 준비와 여성들의 반대 등을 이유로 정책 시행이 유예됐습니다. 그러다 러시아의 발레리 코레쉬코프 장관이 최근 러시아 국영통신사인 이타르타스 통신에 2년간의 유예기간에도 불구하고 속옷 생산업체들이 규제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면서 논란에 다시 불이 붙은 것입니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등 세 나라가 합성섬유 속옷 금지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합성섬유 속옷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보통 합성섬유는 땀 등의 피부 분비물을 흡수하는 능력이 천연섬유(면, 양모 등)보다 떨어져 피부에 좋지 않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건강만을 위해 합성섬유 속옷을 금지한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이번 조치는 유럽 속옷 시장의 90%를 점유한 다른 유럽 속옷업체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러시아 속옷 시장규모는 연간 약 40억유로(약 5조8300억원)에 달하는데 판매되는 제품의 80%가 EU 소속 국가 등 외국에서 수입되고 있습니다. 이에 러시아가 국내 속옷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이번 규제안 시행을 강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성섬유 속옷 금지 법안으로 매장에서 판매되는 속옷 90%가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의 한 여성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에서 속옷을 사지 않아도 다른 유럽국가 등 해외에서 속옷을 구매할 수 있다”며 “이번 규제안은 정부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법안이라”고 말했습니다.

러시아는 EU의 단일시장 혜택에 대응하기 위해 2009년 관세동맹을 결성했는데요. 러시아의 주도로 옛 소련권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가 이에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말 민간 무역 연구기관인 GTA(global trade alert)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등 관세동맹국들은 수입제한 품목을 설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호무역 장벽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텔레그래프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옛 소련 국가들을 자국 영향권에 묶어둬 EU 등의 외국 국가의 영향을 줄이려고 한다면서 이번 합성섬유 란제리 금지조치에 항의하는 시민 집회가 열린 것도 관세동맹이 직면한 문제들을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