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이 한·미·중·일·러 등 다자(多者)간 안보 체제 속에서 평화적으로 이뤄지면 통일의 파급효과는 한반도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전체로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을 계기로 동북아가 종래 냉전적·대립적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 평화 체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통일 한국과 중국, 일본 등 3국이 연간 660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군사비 지출을 줄일 수 있고, 이를 경제개발에 투입함으로써 동북아 공동 번영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中, 국방비 절감… 경제 건설에 매진 가능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지속되면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경제 건설을 위해 동북아에 평화적 안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남북통일을 반대하기보다는 통일을 위한 다자간 안보 체제를 구축하는 데 동의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또한 이것을 바라고 있고, 일본도 반대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다. 한반도 주변 열강이 참여하는 다자간 안보 기구가 출범할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만일 다자간 안보 협의 체제 없이 통일이 이뤄진다면 한국·미국·중국·일본 간 갈등이나 군사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통일이 이뤄진다면 그전에 다자간 안보 체제가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중·일·러 등의 안보 이익과도 부합할 수 있다. 남북 대치라는 동북아 최대의 안보 위협 요인이 제거되는 만큼 동북아 국가들의 안보 유지 비용이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다자 협의체가 한·중·일을 군비 경쟁 대신 경제협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과거 독일 통일 과정에서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라는 다자간 안보 협의체가 큰 역할을 했고 유럽 냉전 종식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유럽 국가들의 국방비 지출은 GDP의 평균 3.2%에서 1.9%대로 40%가량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이 동북아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다자간 안보 체제 속에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경우 중국은 2011년 기준 GDP의 2% 수준인 국방비 지출(1576억300만달러)을 GDP의 1.52% 수준(1197억7800만달러)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절감액이 378억2500만달러에 이른다. 중국은 이런 국방비 절감액을 경제 건설에 투입할 수 있다. 또 한반도 통일을 계기로 낙후한 중국 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 등을 북한과 연계해 개발할 수도 있다. 또 한반도 통일로 탈북자 대량 유입 등을 막음으로써 북·중 국경 지역의 안정성을 더 높일 수 있다. 중국은 남북통일과 함께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일본과 대만의 핵 개발을 막을 명분도 생긴다.
◇日, 북핵과 중국의 안보 위협 줄어
일본은 2004년과 2010년 공표한 방위 계획 대강(大綱)에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안보상의 중요한 위협 요인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다자간 안보 체제 속에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면 이런 위협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중국의 북한 나선·청진항 이용에 따른 중·일 간 군사적 긴장 관계도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중국 해군 함정들이 원산 등에 빈번하게 드나드는 것을 동해에서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보고 있었다. 통일연구원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오히려 일본의 북한 항만 이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11년 기준 일본의 국방비 지출이 GDP의 1% 수준인 592억4200만달러지만 다자간 안보 체제 속에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질 경우 GDP의 0.76%인 450억2400만달러까지 줄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절감액이 142억1800만달러에 이른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은 일본이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일본 경제를 회생시키는 호재가 될 수 있다. 일본은 통일 한국이라는 개방적이고 잠재성이 큰 교역 시장을 갖게 되고, 환동해 경제권 개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사회정보관리연구센터장은 "통일과 한·중·일 다자간 안보 체제는 불가분 관계"라며 "다자간 안보 체제 구축 여부에 따라 한·중·일 3국의 안보적 편익은 8배 이상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