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년 이화여대 역사에서 첫 한국인 총장은 1939년 7대 총장, 당시 교장으로 취임한 김활란이었다. 이화학당 설립자 메리 스크랜턴부터 6대까지는 모두 미국 여자 선교사가 했다. 기혼자였던 스크랜턴을 제외하면 한국인인 김활란까지 모두 미혼 여성 총장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굳건했던 '미혼 총장'의 장벽은 1996년 11대 장상 총장 때 무너졌다.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뽑은 후보 세 명이 모두 기혼이었다. 후보추천위도, 재단 이사회도 '기혼 총장'의 등장을 시대 흐름으로 받아들였다.

▶기혼 총장이 탄생하자 남자 교수들이 더 반겼다. 총장 자격에 마지막 남은 '여자 총장'의 전통도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그 바람이 현실이 됐다. 스크랜턴부터 14대인 지금 김선욱 총장까지 이어져온 철옹벽이 사라진다. 그제 이화여대는 '제15대 총장 후보 추천에 관한 규정'을 새로 마련했다. '여성에 한정'이라고 명시했던 총장 자격을 '여성에 한정하지 않음'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남자도 총장이 될 길이 열린 셈이다.

▶그런데 취재를 해보니 총장 선출 규정에 '여성이어야 한다'거나 '미혼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다. 장상 전 총장은 어제 통화에서 "내가 첫 기혼 총장이 됐을 때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규정은 이화에 없었다"고 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적(的) 혁명도 아니었고 불법도 아니었다"며 웃었다.

▶'여성에 한정'이라는 규정은 2010년 14대 총장 선거를 앞두고서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배경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있다. 우선 총장 유고 때 부총장 남자 교수가 총장직을 승계하면 그간의 '불문율'이 저절로 깨진다고 걱정했다는 설(說)이다. 또 하나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총장 성차별'부터 없애야 한다는 학내 젊은 목소리를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불문율을 문서로 명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얘기다.

▶전통을 지킬 것인가, 시대 요구에 맞출 것인가. 이화여대의 판단은 시대의 거센 물살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교수 절반이 남자인 마당에 지도자를 여자로 국한한 것은 역차별일 수 있다. 리더십을 여성 남성 구분해 말하는 것조차 구닥다리가 된 시대 아닌가. 하버드대 개교 371년 만에 탄생한 첫 여성 총장 드루 길핀 파우스트처럼 취임 소감을 말하는 남자 총장을 이화여대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첫 남자 총장이 아니다. 128년 이화의 전통을 이어온 다른 총장들과 같은 총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