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서울과 암스테르담을 사이에 두고 장거리 연애 중이던 후배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다. 그들은 암스테르담에서 3개월간 함께 있었다. 비자 문제 때문에 그녀가 서울에 가야 하던 날 공항에서 남자는 다시 한 번 함께 있을 방도를 마련하겠다고 '피앙세 비자'를 언급했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사라졌다. 남자는 어째서 중요한 순간에 여자를 버리고 도망쳐버릴까. 어째서 이런 일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걸까. 나는 남자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곤 하는데, 가장 많은 부류가 바로 이 '회피형 인간'이다. 불행히도 이별의 여파는 여전해서 그녀는 요즘도 암스테르담과 서울의 시차를 무의식적으로 느끼며 산다.
별 하나 뜨지 않는 나의 어두운 밤은 태양 가득한 너의 찬란한 낮인 셈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낮과 밤이 이렇게나 다른데 우리가 그걸 뭉뚱그려 하루라고 부르는 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셈이다.
서울과 부산을 사이에 두고 연애하던 다른 후배도 얼마 전 연인과 헤어졌다. 그 얘길 친구와 하고 있는데,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14시간 시차를 극복하는 연애를 하던 한 친구가 이런 얘길 했다. "내가 2년 동안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느낀 결론은 딱 하나야. 이런 '롱디(Long Distance·장거리)'가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양다리 걸치기야!" 그녀는 거의 단언하듯 말했다. '양다리'만이 장거리 연애로 생기는 '섹스 없는 연애'라는 지독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지리로 인해 죽어 버린다'고 말한 사람은 '에리히 케스트너'다. 한국 속담에도 '눈에 안 보이면 멀어진다'는 종류의 무수한 잠언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사랑이 견딜 수 있는 거리는 도대체 얼마만큼일까? 내 주위엔 페이스북에서 처음 만난 나이지리아 출신의 축구 선수와 결혼한 사람이 있을 정도다. 싱가포르 축구팀에서 활동 중인 그 남자와 비행기로 오가며 연애하다가 그녀는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외국어가 능통한 세대, 유학이 일반화된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다른 언어와 시차를 넘어선 다양한 형식의 연애가 존재한다. 대부분은 실패했거나 난기류에 휩싸인 이 불안정한 연애 때문에 울분을 서슴지 않던 친구가 많았던 어느 날 나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 '장거리 사랑'을 발견했다.
사실 이 책에는 지구화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우리 엄마의 고향은 베트남이고, 내 간은 중국에서 구했고, 국적은 둘인데 사랑은 하나!"라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혼모나 비혼부, 결혼과 이혼이 반복된 결과 생기는 '짜깁기 가족', 국제결혼 부부, 결혼 및 노동 이주에 대리모, 그리고 스카이프에 기댄 애정 관계라는 온갖 종류의 장거리 관계, 이른바 사랑의 지구적 혼란에 대한 얘기인 셈이다. 하지만 '연애'와 '사랑'에 초점을 맞춰 이 책을 읽다 보면, 더군다나 장거리 연애 중인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서 어떤 희망과 의심을 동시에 발견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심지어 가까움이라는 건 신화라고 말한다. 장거리 연인이 동경하는 사랑은 천편일률적인 일상으로 인해 질식해 죽지 않는 사랑이다. 지나치게 가까운 것은 사랑을 파괴한다. 장거리 사랑은 연인에게 서로 항상, 그리고 명시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요구와 부담을 덜어준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며 대립되는 것을 화해시키고 가까운 것과 먼 것, 자신의 삶과 공동의 삶을 허락한다…. 장거리 사랑은 사랑과 섹스의 분리뿐만 아니라 사랑과 일상의 분리에도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사랑은 침대 시트를 빨지 않는 섹스, 설거지 없는 식사, 땀과 관절의 통증이 없는 등산과 같다."
장거리 연애의 장점에 대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장거리 연애 성공자는 거의 없다. 상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유별나게 대상을 이상화한다는 문제점 이외에도 이런 연애의 가장 나쁜 점은 내가 불행하면 상대도 잘 지내지 못해야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일이다. 상대편이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말하는 장거리 커플을 나는 얼마나 많이 봤던가.
"어느 날 장거리 사랑을 하는 커플의 원대한 꿈이 실현되어 다시 함께 지내는 근거리 사랑이 될 경우 현실의 시험이 닥친다. 그럴 경우에 이별의 이별이 일어난다. 그때 많은 사람이 거리가 친절하게 가려준 덕택에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상대방의 면들을 발견한다. 그러면 '오, 그대가 여기 있다면'이라는 장거리 연인의 그리움의 탄식은 '오, 그대가 거기 있다면'으로 돌변한다."
'이별의 이별'이 도미노처럼 발생한다는 말에 나는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여기'가 '거기'로 바뀌는 시차를 돌연 납득했다. 최근 '남자를 위하여'라는 책을 낸 소설가 김형경의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남자와 여자가 사랑할 때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는가. 여자와 남자의 비율이 9:1. 여자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걸 30대 초반 알았다. 너무 놀랐다!"는 말을 발견했다. 남자가 감정적으로 충만할 때는 침대 안에서뿐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자기감정을 여자들과 달리 성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서, 여자 편에선 그것이 터무니없거나 거칠게 느껴진다. 결국 침대가 사라진 장거리 연애에서 감정은 전파들과 함께 삭제된다. 결국 '장거리 연애'는 남자들에겐 더 불리한 연애인 셈이다.
실연 후 낮과 밤이 바뀌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후배에게 시인 김소연이 '시옷의 세계'에서 했던 말을 슬쩍 건네주었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은 복수하고 싶은 욕망을 기초로 한다." 암스테르담에 뜨는 달도 서울의 달과 같을 것이니 그 달을 향해 빌고 또 빌라고도 했다.
기어이 당신의 불행을! 마침내 나의 성공을! '내 탓'이 아니라 무조건 '네 탓'을 하는 건, 이때 꽤 괜찮은 위로가 된다. 이처럼 여자들이 끝없이 눈물을 닦아줄 위로의 말을 '발견'하고 '발명'해내는 동안 남자들은 술을 마신다. 아무 말 없이! 술잔을 부딪치면서! 자기 몫의 술을 마시면서 말이다.
●장거리 사랑―'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을 쓴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의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