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이 공개된 성범죄자의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숨진 채 발견됐다고 3일 동아일보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30분쯤 충남 아산시의 한 3층짜리 신축건물의 원룸에서 타다 남은 번개탄과 함께 고등학교 2학년생인 박모(17)군의 싸늘한 시신이 발견됐다. 박군의 스마트폰 메모장에선 부모와 형, 남동생에게 남기는 5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 평소 “의사가 돼 가족을 호강시키겠다”던 둘째 아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박군의 유서는 “잠깐 무너지셨지만 매일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시는 거 정말 멋있고 존경스럽습니다”라며 아버지에게 남기는 글로 시작됐다.

신문에 따르면 ‘잠깐 무너졌던’이라고 표현된 박군의 아버지는 ‘성범죄자’다. 세 아들을 둔 40대 중반의 그는 지방의 한 철도역 직원으로 일하던 2010년 5월 봉사활동을 하러 온 12세 여중생을 추행한 죄로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신상정보공개 5년에 처해졌다. 피해 여중생에게 △회의실 탁자를 닦도록 한 뒤 어깨를 주무르면서 1~2초간 껴안고 △오른쪽 볼에 입을 맞추고 △음료수를 건네주는 과정에서 오른손을 아래로 쓸어내리면서 학생의 왼쪽 가슴을 1회 만졌다는 혐의였다.

‘만 13세 미만 강제추행죄’를 적용받은 박씨는 무거운 형벌을 받았다. 박씨는 “격려 차원에서 어깨를 두드리긴 했지만 껴안거나 입을 맞추거나 가슴을 만지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0년 12월 1심에서 박씨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자, 당시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박군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뒤, 박군은 박씨 사건의 변론자료 준비를 도우며 무죄를 밝히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25일, 박씨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철도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접었고, 초등학생인 셋째 아들은 “나는 불행하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세상을 떠난 박군은 유서를 통해 견디기 힘든 세상의 낙인에 대해 호소했다. 박군은 유서에 “저희 가정이 완전히 단절되고 가족 모두 힘들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는 걸 여러분들께 알리고 싶어요. 저희 불쌍한 가족 구원해주세요. 엄마 이 글은 꼭 페이스북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줘”라고 적었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성범죄자 신상공개’ 명령은 박씨 가족의 삶을 뒤흔들었다고 한다. 박씨의 이웃들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년 박씨의 신상과 사진 등의 정보가 담긴 우편물을 받기 시작했다. 법이 개정·강화되면서 성범죄자가 살고 있는 건물의 번호와 이름, 나이, 사진 등의 정보가 담긴 우편물이 그 건물 소재지 읍면동의 모든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 읍면사무소와 동 주민자치센터, 학원, 청소년수련시설 등에 보내진다.

이후 세 아들은 학교와 학원을 갈 때마다 어딘가에 아버지 사진이 박힌 신상공개물이 있을까 불안에 시달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박씨 가족은 다른 동네의 건물로 주거지를 옮겼지만 건물 주인이 “우리 건물이 성범죄자가 사는 곳으로 등록됐더라. 나가달라”고 요구해 다시 이사를 해야 했다고 한다.

박씨는 현재 23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해고돼 전국을 떠돌며 트럭 운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숨진) 둘째는 얼마 전에 ‘아버지, 날씨가 추우니 꼭 점퍼 입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낼 만큼 아버지를 생각하는 아이였다”고 울먹였다.

박군은 지난달 24일 마지막으로 일기를 썼다고 한다. 해당 일기에는 “눈만 뜨면 우울해지고 짜증난다. 나도 모르게 허튼 생각하게 되고 약이 생각나지만 선뜩 행하지는 못하겠어서 그냥 잠들고 만다. 어젠 거의 (자살) 직전까지 갔었던 것 같다. 너무 괴롭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박군의 어머니는 동아일보에 “일기를 보고 아들에게 ‘엄마도 죽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너희들 때문에 꾹 참고 살고 있다. 너도 혼자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명심하라’고 당부했었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했던 것 같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