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7년 입교(入校)한 육사 37기는 350여명 입교해 박지만씨를 포함해 총 293명이 임관했다.
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육사 37기 장군 진급자는 총 48명이다. 준장 진급자는 권태환 전 1공병여단장을 비롯해 27명, 소장 진급자는 이상욱 국방부 군수관리관을 비롯해 13명, 중장 진급자는 김영식 5군단장을 비롯해 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김희철 위기관리비서관(전 육군본부 정책실장.예비역 소장), 서용석 정보융합비서관(전 청와대 정보분석비서관.준장) 등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실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육사 37기는 130여명이 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37기 대령들은 모두 내년에 만기 전역한다.
육사 37기는 '유신 사무관'으로 공무원이 된 마지막 기수로도 알려졌다. 유신 사무관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77년도부터 시행돼 사관학교 출신자 가운데 대위까지 복무한 군인을 5급(당시 3급)사무관으로 특채하는 제도였다. 37기 동기생들은 30여명이 5급 사무관으로 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 군비통제관을 지낸 김국헌 장군(예비역 육군소장)은 "1학년 생도 시절 박지만은 유난히도 불안해 보였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되었던 것은 훈육관 임형주 소령(작고)이었다"고 말했다.
임형주 소령은 육사 생도 생활을 감동적인 필치로 소개한 《서울의 동북》의 저자로서 따뜻한 성품과 높은 기개를 지닌 청년장교였다고 한다.
경북 금릉 출신의 정승화 장군이 호남 출신의 훈육관을 선발해 사부로 임명한 것은 지역성을 따지지 않은 선택이었다. 박 대통령이 박지만 생도에게 "가장 존경하는 군인을 말해 보라"고 하였더니 임형주 소령을 꼽았다고 한다.
직속상관과 스승을 존경하는 것이 군인으로서, 사관생도로서 바른 자세임을 알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은 빙긋이 미소지었다고 한다.
김국헌 장군이 임형주 소령에게 들은 에피소드 하나.
박지만이 처음 입교하던 날, 박 대통령은 경호원 한 명만을 대동하고 태릉의 육사로 아들을 데려가 박지만에게는 "잘해라", 훈육관에게는 "부탁한다"는 짤막한 인사를 하고 들여보냈다. 박 대통령은 아들이 훈육관과 함께 육사 연병장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한다.
사관생도 생활이 어떻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박 대통령으로서 귀공자로 자란 아들을 ‘사자 굴’에 들여보내는 것에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임형주 소령은 생전에 박 대통령의 부정(父情) 어린 그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육사 37기생들이 서울 온 미스유니버스들과 '즉석 댄스'를 했다?
박지만 생도와 그의 동기인 육사 37기에 대한 특별대우는 없었을까.
동기생들은 입을 모아 “특혜는커녕 대통령 아들과 동기생이라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했다.
육사 38기의 한 대령은 “당시 37기의 선배 기수들은 박지만 선배가 포함된 37기에 편견을 갖고, 다른 기수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더 엄격하게 얼차려를 줬다”며 “특히 시골에서 올라온 선배들은 정의감에 불타 유명인사 자제들의 잘못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영웅심리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37기 육사 생도들은 하계훈련 기간 당시 영내 군사훈련(1학년), 제2하사관학교 교육(2학년), 유격훈련(3학년), 공수낙하훈련(4학년)을 받았다.
김충배 전 육사교장은 “37기가 2학년 때 간현유격장이 있는 원주 하사관학교(현 36사단 자리)로 인솔했었다”며 “첫 하계훈련이라 훈육관들이 박지만 생도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원주 하사관학교를 방문해 당시 정승화 1군사령관의 영접을 받고 지만씨를 격려했다.
37기의 한 예비역 대령은 “오후 훈련 도중 회관으로 모이라고 해서 전투복을 챙겨 입고 가 보니 박 대통령과 둘째 근영 양이 지만이와 사진촬영을 하고 있었다”며 “박 대통령이 훈련생도들이 통닭 한 마리씩을 먹을 수 있도록 금일봉을 넉넉하게 전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37기 동기회의 한 간부는 “1979년 여름, 포천 8사단 신병교육대 훈련장에 갔는데 대통령 아들 기수가 왔다며 쓸고 닦고 했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처음 가는 야전부대라 부대가 원래 이런가 보다 했고, 삼계탕을 주면 부식이 원래 이런가 보다 했다. 훈련을 마치고 육사에 복귀하면 선배들이 37기 동기 전체를 집합시켰다”고 했다.
37기생들은 지금도 동기들 모임이면 어김없이 1980년 세계미스유니버스대회 이야기를 꺼낸다고 한다. 1980년 7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미스 유니버스 본선대회가 열렸다. 본선은 이날 하루였지만, 사전 행사와 예선은 6월 말부터 시작돼 3주에 걸쳐 열렸다. 본선은 미 CBS방송을 통해 위성중계됐다.
69개국에서 온 ‘미(美)의 사절’은 신군부 세력의 ‘문화정치’ ‘스펙터클 정치’에 소도구로 동원됐다. 미녀들은 말 그대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경복궁, 불국사 같은 관광지를 찾고, 육군사관학교도 찾았다. 한 예비역 장성(37기)은 “37기 생도들은 제식훈련과 분열 시범을 보였다”며 “당시 언론은 ‘미녀들이 원더풀을 연호했다’고 보도했다”고 했다.
그는 “37기생들은 거여동 공수훈련장에서 점프훈련을 받다가 ‘신장 173cm 이상 생도 열외하라’는 지시를 받고 80명의 생도들이 화랑복을 입고 7월 8일 열린 본선(세종문화회관)에 직접 나가 참가자들을 에스코트했다”고 했다.
그는 “화랑복을 입고 롯데호텔 파티장까지 가서 미녀들과 즉석 댄스도 추었다”며 “행사가 끝나자마자 점프훈련장인 거여동으로 복귀해 철모를 쓰고 다시 공수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박지만, 전역후 軍과 거의 인연 끊었지만 그가 속했던 '유신중대(6중대)' 동기회에는 꼭 참석
박지만이 생도 3학년일 때 10·26 사태가 일어났다. 그의 동기들은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 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하나뿐인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정권의 감시 대상으로 전락한 인간 박지만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1981년 2월 육군 소위로 임관한 박지만 생도의 군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 방공포병 대위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 후 대위로 전역해 군과의 인연은 사실상 끊어졌다. 이후 박지만씨는 심신이 망가진 상태로 방황을 거듭하며 ‘비운(悲運)의 황태자’로 불렸다.
박지만 회장은 전역 후 군과 거의 인연을 맺지 않았다. 동기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기들 사이에서 ‘잊힌 인물’이 됐다.
동기회의 한 간부는 “사업적 관계로 만났던 동기들 몇 명을 빼 놓고는 한동안 교류가 없었다”며 “솔직히 구설수에 오를까 봐 그를 만나길 꺼리는 동기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지만 회장에게 육사 37기 내 6중대는 각별하다. 박지만 회장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중대 모임만은 꼭 참석한다고 한다. 6중대 모임은 전후반기 2차례 정도 모인다. 2년 전 모임에는 박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가 나와, “제가 나이가 가장 어리니 부인 모임의 총무를 맡겠다”고도 했다고 한다.
37기 생도들은 6중대를 ‘유신 중대’라고 부른다. 육사에서는 ‘광개토 1중대’ ‘재구 2중대’ ‘을지 3중대’ ‘무열 5중대’처럼 ‘유신 6중대’라는 말이 쓰이는데, 유신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이 아니라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유신’을 뜻한다. 학년별로 20명씩 총 80명으로 한 개 중대를 편성한다.
박 회장의 중앙고 동기인 이재수 중장은 11중대로 좀 떨어져 있다. 그러나 37기 동기들은 “중대는 떨어져 있지만, 학과시간은 물론이고 휴가나 외박 때도 꼭 붙어 다녔다”며 “누나(박근혜 대통령)도 어머니(육영수 여사)를 잃고 방황하던 동생을 보살펴준 이 중장을 친근하게 대했다”고 증언했다.
《월간조선》이 파악한 유신 6중대 멤버는 총 18명이다. 육사 37기 수석 입교생인 원영주씨를 비롯해 한국국방연구원, 육군정보학교, 방위사업청, 감사원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상욱 국방부 군수관리관(소장)과 정태희 육군 군수참모부장(소장)은 육군 군수사령관 물망에 올랐으나 고배를 마셨다.
박지만 회장의 한 측근은 “37기생들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정치적인 동기들이 없다”면서 “지난해 대선 이틀 후 열린 중대 모임에 박지만 회장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보면, 박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는 행동은 극도로 삼가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37기 동기생들도 사적인 모임에서 무심코 한 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조심하고 있다”며 “현 정부 내내 지만씨와 37기에 불편한 시선이 쫓아다닐 것이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불필요한 루머들이 확산되지 않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