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1910~2006)라는 일본 학자가 있다. 갑골문과 한자의 기원 연구에서 세계적 권위로 꼽힌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된 '한자, 백 가지 이야기'는 그가 대학을 정년 퇴임한 뒤 예순여덟 살 때 쓴 책이다. 시라카와의 대표적 업적은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 3부작이다. 그는 이 책들을 일흔넷부터 여든여섯 살 사이에 완성했다. 시라카와는 아흔 다 돼 문화훈장을 받고는 그날 오후 바로 연구실로 돌아가 책을 붙잡았다고 한다.
▶한 나라의 학문 수준은 시라카와 같은 학자를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에도 달려 있을 것이다. 한쪽 눈을 잃어 가며 세계 최고 한자 사전인 '대한화(大漢和)사전'을 편찬한 일본의 모로하시 데쓰지는 아흔아홉에 '공자 노자 석가'를 썼다. 일본이 동양학의 중심으로 떠올랐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의 20세기 격동을 온몸으로 겪었던 철학자 펑유란(馮友蘭)은 아흔다섯에 세상을 떠나던 날까지 일곱 권짜리 방대한 '중국철학사 신편' 원고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옛 시를 빌려 "누에는 죽어서야 실 뽑기를 그친다"고 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학자들의 일흔 이후는 적막하다. 젊은이의 천재성과 직관이 필요하다는 자연과학이든, 오랜 지식의 축적에서 우러난 통찰과 해석이 필요한 인문사회과학이든 마찬가지다. 2008년 이후 정년 보장을 받은 서울대 교수들의 논문 실적을 조사했더니 정년을 보장받기 전보다 논문 편수가 절반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다른 국립대 교수들 논문도 평균 30%가량 줄었다.
▶"미국 대학의 조교수는 이혼당하는 1순위"라는 말이 있다. 학문에 뜻을 두고 대학에 자리 잡으려면 젊은 시절 죽자 사자 공부해야 하는 건 어느 나라든 다르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정년을 보장받는 순간 학문을 향한 굳은 뜻이 눈 녹듯 허물어지는가 보다. 학계의 조로(早老) 현상이다.
▶사실 논문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가 중요한 건 아니다. 몇 해에 한 편을 쓰더라도 동료 학자가 눈 비비고 읽을 만한 논문을 쓰면 된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그런 풍토가 정착되도록 북돋워야 한다. 그러나 몇 해 전 한국연구재단 조사를 보면 우리 학자들이 발표하는 논문의 80%는 아무도 인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중국 석학 후스(胡適)는 "대학은 큰 건물이 있는 곳이 아니다. 큰 학자가 있는 곳이다"고 했다. 경험 많은 학자들의 학문적 온축(蘊蓄)이 담긴 연구가 많이 나와 우리네 정신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