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성향(性向)과 감성(感性)에 치우친 여론 재판 논란을 불러온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법조계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확대 시행보다는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을 개선해 가면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정쩡한 상태인 제도를 제대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치 사건 배제 제도화해야"
서울중앙지법의 '나꼼수 판결'이나 전주지법의 시인 안도현씨 무죄 평결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사건에 대해 법관이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민참여재판법에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판사가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대부분 거부하지 않는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인 정주교(55) 변호사는 "여론에 따라 법률이 왜곡되게 해석될 수 있는 사건들은 국민참여재판 허용 여부를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편향성이 문제가 될 만한 사건을 다른 지역으로 이관시키는 방법도 나왔다. 고법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현재 법률에도 특정 지역에서 재판이 어려울 때 관할을 바꿔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며 "국민참여재판에 이런 조항을 명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만장일치 통해 평결 내려야"
판사 출신인 방희선(58) 동국대 법대 교수는 "미국에서도 배심원들의 지역·인종·감정 등 집단주의 우려가 제기된 상태"라며 "배심원 선정 절차를 정밀하게 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배심원을 뽑을 수 있도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더 많은 시민들로 인재 풀을 넓혀 지역·직업 등에서 다양한 배심원들을 뽑고 사전 교육을 강화해 중립적 판단을 내리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배심원들이 다수결로 평결을 내리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검사장 출신 고영주(64) 변호사는 "미국은 만장일치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데, 우리처럼 다수결로 평결을 내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명선(54)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배심제를 도입한 나라는 모두 만장일치를 통해 평결을 내리고 있다"며 "다수결은 민사재판에서나 맞는 것이지 유무죄 확신이 중요한 형사재판에서는 다수결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부장검사는 "재판 마지막에 피고인 측에게만 최후진술권을 줘 피고인이 감성에 호소한 직후에 평결에 들어가 배심원들이 속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 경우엔 검사에게도 막판 반론 기회를 주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정쩡한 국민참여제도 바꿔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2008년부터 작년 말까지 배심원 출석률은 절반 이하(평균 49.5%)에 불과했다. 2명 중 1명꼴로 재판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출석률은 매년 감소해 2008년 57.3%에 달했지만 해마다 감소하면서 지난해 44.7%까지 하락했다. 서울북부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 업무가 가중되더라도 배심원 소환자 수를 늘리고 적극적으로 설득해 출석률을 높여야 편향된 배심원에 의한 오판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일종의 실험 단계"라며 "미국식 배심제든 독일식 참심제든 명확한 원칙을 정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노명선 교수는 "현재 우리의 국민참여재판 제도는 외형은 미국식이지만 실제는 판사가 다 하는 어설픈 형태"라고 말했다. 그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면 우리의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일본처럼 시민이 판사와 함께 재판하는 참심제가 더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참심제(參審制)
일반인 2~3명이 참심원 신분으로 판사와 함께 재판부를 구성해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다. 참심제는 독일 등 주로 유럽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다. 참심제는 유죄 평결을 한 경우 판사와 함께 양형(量刑)에 대해서도 토의하고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무죄 판단만 하고 양형은 판사가 결정하는 미국의 배심제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