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T 기업을 선도했던 기업가들의 언론 산업 진출이 잇따르고 있다. 전통 미디어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정보기술업계 혁신가들의 참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관련업계 관심이 크다.
세계적인 인터넷 경매업체인 이베이(e-Bay)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야르(46)는 지난 16일 언론사 창업의 포부를 밝혔다. 자신의 블로그에 직접 글을 올렸다. 제목은 ‘저널리즘을 위한 나의 다음 도전(My Next Adventure in Journalism)’. 또다른 인터넷 유통업계의 거인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가 136년 역사의 신문 워싱턴포스트 인수를 발표한 지 2개월 만이었다.
오미디야르가 언론사 창업을 선언한 데 이어,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의 글렌 그린월드(46) 기자가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관심은 커졌다. 그린월드는 바로 전날 “일생일대의 기회를 제안받았다”며 가디언에 사표를 던져 주변을 놀래켰던 터였다. 그는 가디언에 근무하면서도 유명세를 떨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전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제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국(NSA)의 비밀 정보수집 행위를 최초로 보도한 기자다.
오미디야르의 새 언론 매체에는 그밖에도 유명 인사들이 합류를 선언했다. 이 중에는 그린월드에게 스노든을 소개해 준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로라 포이트라스와 이라크·옛 유고슬라비아·나이지리아 등지에서 프리랜서 분쟁 지역 전문 기자로 명성을 날린 제레미 스카힐 등도 포함됐다.
오미디야르는 언론사 설립 배경에 대해 “미국과 세계 등지에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독자들이 참여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찾겠다”며 “독립 저널리스트들에게 온라인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때 워싱턴포스트 인수도 고려했지만, 아예 새 언론사를 차려 키워나가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 “아무리 강렬한 탐사보도라도 대중의 관심 밖에 있으면 무용지물”
10년 전 이베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오미디야르가 인터넷 언론 사업에 뛰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년 전 그의 고향인 하와이를 거점으로 ‘호노룰루 시빌 비트’(Honolulu Civil Beat)라는 유료 탐사보도 매체를 만들기도 했다. 이 매체는 지금도 운영 중이다.
오미디야르는 이번에 설립 의사를 밝힌 새 매체와 관련한 세부 계획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미국 내 언론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다만 오미디야르와 친분이 두터운 뉴욕대 언론대학원 제이 로젠(Jay Rosen) 교수가 최근 그와 나눈 대화를 블로그에 남겼다.
로젠 교수는 오미디야르가 그동안 “아무리 독립적이고 강렬한 탐사 보도 기사를 쓰더라도 대중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으면 권력의 견제 기능 역할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고 전했다. 그린월드와 같은 스타 기자 영입을 통해 더 영향력 있는 매체를 만들고자 한다는 것.
로젠 교수는 오미디야르가 종이신문 대신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서만 기사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새 매체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모두 재투자하고, 일부 특정 독자층을 겨냥하는 전문지가 아닌 경제부터 스포츠·연예 등 전 분야를 망라하는 기사를 공급하는 종합 언론사를 세울 생각이라고 전했다.
◆ 2억5000만달러 투자약속…“싼값에 운영 가능하기 때문” 비판도
앞서 베조스 아마존 회장은 지난 8월 워싱턴포스트를 2억5000억달러(약 2700억원)에 인수했다. 그는 지난 달 9일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을 직접 방문해 “워싱턴포스트의 성공은 밥 먹고 세수하는 매일매일의 습관(daily ritual habit)처럼, 독자들이 서로 다른 주제로 묶인 기사를 찾도록 만들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했다.
IT 혁신가들의 이같은 언론 사업 참여에 대해 한쪽에선 비판적인 눈으로 보기도 한다. 언론의 영향력에 관심을 가진 일부 IT 거부들이 언론사를 ‘전리품’처럼 사들인다는 것. 매체 전문가인 릭 에드몬드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신문사 가격이 급락해 헐값에 살 수 있는 데다 온라인 운영비도 크게 낮아진 게 이들 신흥 갑부들을 유인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오미디야르와 같이 일했던 기자들은 그의 언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높이 산다. 그와 같이 시빌비트에서 일했던 아드리엔 라프랑스 기자는 당시 오미디야르가 누차 기자들에게 “언론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오미디야르가 새 언론사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약속한 금액은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금액과 같은 2억5000만달러(약 2700억원). 포브스가 집계한 그의 재산 85억달러의 3% 정도 되는 금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