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있는 '아웅산 순국(殉國) 외교사절 위령탑'. 높이 17m인 위령탑은 1983년 북한이 미얀마(당시 버마) 아웅산 국립묘지에서 자행한 폭탄 테러로 외교사절 17명을 숨지게 한 후, 한국반공연맹(현 자유총연맹)이 1984년에 세웠다. 북한이 보란 듯 휴전선 근처 임진각에 세웠지만, 아웅산 테러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찾는 이가 드문 곳이 돼버렸다.

7일 오전 이곳에서 육군 1사단 군악대가 연주하는 관악기 소리가 나지막이 깔리기 시작했다. 테러가 발생한 미얀마 현지에 추모비를 건립하기 위해 활동 중인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 건립위원회'가 주최한 추모행사가 개최됐다.

추모비 건립위원장인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인 감이 있지만 이제 한국과 미얀마가 나서서 아웅산 국립 묘역 내 추모비 설립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웅산 순국 사절 추모비 건립위원회는 7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 있는‘아웅산 순국 외교 사절 위령탑’에서 북한의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30주년 추모 행사를 열고 미얀마 현지 추모비 건립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앞줄 왼쪽부터 이인재 파주시장, 권철현 세종재단 이사장, 이기백 전 국방장관, 당시 문화공보부 직원이던 김상영씨.

지난 3월 출범한 민관(民官) 건립위원회는 연말까지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국립 묘역 내 경호동 부지(260㎡)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했다. 유족은 매년 테러 발생일인 10월 9일 국립서울현충원 묘소에 참배하고 있지만 테러 발생 30주년인 올해는 이와 별도로 위령탑을 찾아 추모비 추진 경과를 보고했다.

이날 행사에는 당시 중상을 입었던 이기백 전 국방장관과 고(故) 서석준 부총리의 부인 유수경 국민대 명예교수, (故)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아들인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 원장, 이인재 파주시장,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실장 등이 참석했다.

함재봉 원장은 "가족 입장에서는 몇 주기냐에 상관없이 (그날 사건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긴 하지만 국가와 언론이 돌아가신 분들을 잊지 않아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1983년 테러 당시 문화공보부 직원으로 현장에 파견돼 납탄 6개가 몸에 박힌 줄도 모르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던 김상영씨는 "미얀마 현지에 추모비가 세워지게 돼 30년간 마음에 담고 있었던 짐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파주시 이인재 시장은 "미얀마 현지 추모비 건립이 잘되기를 기원한다"며 "임진각 위령탑에도 더 많은 추모객이 올 수 있도록 한국어·영어·중국어·일본어로 안내판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이기백 전 장관은 "아웅산 테러는 고금(古今)에 없었던 테러 만행이지만 정작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며 "당시 사건을 역사 교과서에 실어서 우리 후세가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