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갓 솔, 벗 아임 낫 어 솔저. 아 갓 솔, 벗 아임 낫 어 솔저(I got soul, but I'm not a soldier) ♩♬'….
'올 디즈 싱스 댓 아이브 돈(Alll these things that I've done)'이 5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울려 퍼지자 약 3800명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따라 불렀다. 인터넷에서 이벤트를 논의한 일부 팬들은 지퍼 백에 담아온 종이 가루를 노랫말에 맞춰 흩뿌리기도 했다.
미국의 록밴드 '더 킬러스(The Killers)'의 첫 내한공연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12 더 킬러스'는 한바탕 록 페스티벌 전쟁이 벌어진 지난 여름의 어떤 공연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2004년 데뷔한 킬러스는 애초 2010년 2월6일 첫 내한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콘서트를 앞두고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32)의 모친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취소됐다.
지난해 발매한 정규앨범 '배틀 본(Battle Born)'을 기념하는 투어인 이번 무대는 그간 3년8개월의 기다림을 불식시키기도 남았다. 데뷔년도로 따지면, 기다림이 9년인데 그 아쉬움도 달래줬다. 예정보다 약 20분 늦은 오후 8시20분부터 90여분간 17곡을 들려주며 사운드를 휘몰아쳤다. '배틀본' 재킷 한가운데는 번개가 박혀 있다. 이번 투어 무대의 플라워스가 사용하는 키보드 앞에도 역시 이 번개와 모양이 같은 전열등이 설치됐다. 공연 내내 붉은 색, 푸른 색 등 시시각각 변하며 분위기를 강렬하게 주도했다. 킬러스는 미국 밴드이나, 브릿팝의 멜로디컬한 세련됨 때문에 영국 밴드로 오해를 받는다. 실제 접한 무대 자체는 미국 록밴드들의 테스토스테론이 풍겨나왔다.
사실 '떼창'은 첫곡부터 시작됐다. 킬러스의 대표곡인 '미스터. 브라이트사이드(Mr. Brightside)'로 예열을 할 필요도 없이 바로 끓는 점으로 돌입했다. 다만 이 곡의 제목처럼 객석의 조명은 꺼지지 않았다. 2번째 곡 '스페이스맨'부터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번개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프럼 히어 온 아웃'을 부른 뒤에는 다소 엄숙했다. 플라워스가 하늘에 있는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2010년 첫 내한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플라워스는 이어서 부른 '더스트랜드 페어리 테일' 끝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 곡의 노랫말은 그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신데렐라와 미국 왕자에 비유, 일종의 '황무지의 동화'로 풀어냈다.
플라워스는 그래도 공연의 대부분을 화려한 무대 매너로 팬들을 열광케 했다. 이름 때문에 국내 팬들에게 '브랜든 꽃'으로 통하는 그는 여전히 뛰어난 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을 자랑했다. 초반에 다소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한국 팬의 인장과도 같은 뜨거운 반응에 점차 기력을 되찾았다. 내내 모니터용 스피커에 올라가면서 고군부투했다. 서툰 한국말로 "음악과 우리는 너의 것이다"라고 말하는 등 팬들과 소통하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플라워스 만큼 빛난 것은 드러머 로니 배누치 주니어(36)였다. 한가운데 자신이 이름이 한글로 적힌 검은 반소매 티셔를 입고 등장, 초반부터 팬들의 환심을 산 그는 '파워 드럼'을 보여주면서 존재감을 확실히 했다. 기타리스트 데이브 큐닝(36)도 자기 몫을 묵묵히 해냈다.
다만, 베이시스트 마크 스토머(36)는 개인 사정으로 이번 내한에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공식 투어팀의 연주자가 베이스 연주를 맡았다. 묵직한 베이스 리프가 인상적인 '제니 워스 어 프렌드 오브 마인(Jenny was a friend of mine)'를 스토머의 연주로 듣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공연의 질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체인지 유어 마인드' '제니 워스 어 프렌드 오브 마인' '웬 유 아 영' 등 총 3곡을 앙코르로 들려준 킬러스는 가을 밤, 록이 여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무대 위 번개는 같은 시간 벌어진 '여의도 불꽃 축제'만큼 번쩍였다.
공연에 앞서 실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사운드를 선보이는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가 오프닝 무대를 꾸몄다. 보컬 남상아(40)는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 '내가 고백을 하면 깜짝 놀랄거야'에서 카리스마를 뽐내며, 킬러스를 기다리던 팬들의 설렘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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