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의 편향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역사 이야기를 쉽게 풀어써 인기를 얻고 있는 어린이용 역사 교양 도서 상당수가 사실(史實)을 심각하게 왜곡하거나 편향된 관점으로 서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정을 거치는 교과서와 달리 출판사가 자유롭게 기획·저술해 출간하는 어린이 교양 역사서는 편향적 시각과 오류를 바로잡기 어렵고, 학부모들이 꼼꼼히 살펴보기 전에는 이런 문제점 파악이 어려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지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어린이 교양 역사서 수십종을 무작위로 분석한 결과 9종에서 ▲반미(反美)주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폄하 ▲대한민국의 비(非)자주성 등을 강조하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제점이 발견된 어린이 교양 역사서 9종은 유명 출판사가 발간해 최소 1만부 이상씩 팔려나간 책들이다. 그중 '한국사편지'(박은봉 지음·책과함께어린이)는 지금까지 305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한국사가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자녀에게 일찍부터 역사서를 공부시키는 부모가 늘어나고, 각종 독서 관련 단체나 초·중학교 필독 도서로 선정된 책들인 만큼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판매 권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이용 역사 교양도서 중 일부에서‘북한의 핵개발은 미국 탓’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대변하거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적은 외면한 채 과오만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등의 문제가 발견됐다. 출판계에선“출판사가 자체적으로 감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감수자의 시각대로 역사가 기술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국사시간에 세계사 공부하기'(김정 지음·웅진주니어)는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자위용 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반영해 북한 핵무기 개발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듯한 서술과 6·25전쟁 후 미국의 원조를 폄하하는 등 반미주의적 시각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 책은 지난 8월까지 10만2000부가 판매됐다. 그러나 웅진주니어 손자영 편집장은 "헤게모니에 따라 역사는 계속해서 전복돼 왔다"며 "저자와 편집자, 검수자가 역사적 시각과 서술에 모두 동의해 출판된 책인 만큼 이 책이 편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논리적, 단정적 표현으로 역사적 인물을 부정적으로 그린 책도 상당수 있었다. '하룻밤에 읽는 만화 한국사(2) 조선 중기부터 현대까지'(신수진 지음·주니어랜덤)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오만하고 불손하기로 유명한 그의 성격은 스스로를 조선 왕족의 후계자인 '국부(國父)'로 착각하고 국민을 어리석게 여긴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고 썼다. 명지대 기록대학원(현대사) 강규형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을 태생부터 문제가 있는 인물로 폄하한 것으로 이는 역사적 근거가 없는 창작"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성장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당시 경제 상황을 외면한 서술도 많았다. '십대가 만난 현대사(1) 4·19혁명'(윤석연 지음·한겨레틴틴)은 이승만 정부 시절 미국의 밀가루 원조를 받은 것에 대해 '한국 농촌을 죽여서 미국 경제를 살리는 꼴이었다'며 '자유당과 이승만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었고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는 세상이었다'고 서술했다.

이 밖에도 '김구·전태일·박종철이 들려주는 현대사이야기'(함규진 지음·철수와영희), '교실 밖 국사여행'(역사학연구소 지음·사계절), '탄탄 역사 속으로 6·25전쟁편'(문정민 지음·여원미디어)에서 역사적 인물을 폄하하는 표현이 발견됐고,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10) 우리나라 대한민국'(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휴먼인어린이)에서는 대한민국과 북한에 대한 편향적 서술, '살아있는 역사 재미있는 논술: 일본군위안부에서 6·15 남북공동선언까지(6)'(모난돌역사모임 지음·성안당)와 '한국사 편지'에서는 분단 고착화의 책임을 미국 탓으로 돌리거나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부분이 상당수 보였다.

서울여대 배호순 명예교수는 "역사의 바람직한 측면을 거울삼고 부정적 측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어린이들이 이런 책을 보고 반(反)사회적·반국가적 태도를 갖게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 모임의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역사서인데도 저속하고 감정적 표현이 사용된 부분이 많고 편향적 역사 인식을 주입시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