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 원소의 위험성을 얘기할 때 반감기(半減期)라는 용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반감기란 방사성 원소가 내뿜는 방사선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예컨대 방사성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인데, 방사선량이 지금의 절반으로 감소하는 데 그만큼의 세월이 걸린다는 의미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왜 '전감기(全減期)'가 아니라 반감기라는 말을 쓰는 것일까. 위험한 방사선이 완전히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반인들에게는 더 의미 있는 정보가 아닐까. 서강대 이덕환 교수(자연과학부)는 "전감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든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된 원자핵을 갖고 있다. 어떤 원자는 원자핵이 불안정해서 입자(방사선)를 방출하면서 좀 더 안정된 원자로 바뀐다. 이 과정을 방사성 붕괴라고 하고, 그런 원자를 방사성 원소라고 한다. 방사성 붕괴가 진행될수록 방사선은 줄어든다. 그 양이 절반이 되는 시간은 방사성 물질마다 다 다르다. 우라늄-238은 지구의 나이와 맞먹는 45억년이나 되지만, 베릴륨-8은 찰나도 안 되는 100경분의 82초이다.
방사성 붕괴 과정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반감(半減) 과정과 다르다. 후식으로 콜라를 제공하는 식당이 있는데, 시간당 1L씩 콜라가 소비된다고 가정하자. 어제는 5L짜리 콜라 통을, 오늘은 10L짜리 콜라 통을 내놨다. 콜라가 절반만 남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어제는 2시간 반, 오늘은 5시간이 걸린다. 최초의 양에 따라 반감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반면 방사성 원소는 원래의 양이 얼마든 처음의 반으로 줄어드는 데 항상 똑같은 시간이 걸린다. 반감기가 30년인 세슘의 경우를 보자. 세슘 1t이 500㎏으로 줄어들거나, 세슘 1g이 0.5g으로 줄어들거나 똑같이 30년이 든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려면 그 감소 과정이 위 그림과 같은 형태가 되어야 한다. 이런 모양을 수학에서는 지수함수라고 한다. 모든 방사성 원소는 이 마법과도 같은 지수함수를 따라 방사선이 감소한다. 지수함수의 그래프가 엑스(X)축과 만나는 지점이 방사선이 제로(0)가 되는 순간이다. 지수함수는 그러나 X축과 만나지 않고 영원히 다가가기만 한다. 이덕환 교수는 "따라서 모든 방사성 원소의 전감기는 결국 무한대(∞), 다시 말해 영원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제무성 교수(원자력공학과)는 "자연의 방사성 원소를 봐도 완전히 붕괴돼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며 "방사성 붕괴가 아무리 긴 기간 일어나도 조금이라도 방사성 원소가 남아 있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서균렬 교수(원자핵공학과)는 "다만 어느 방사성 원소든 반감기가 10번 지나면 방사선이 거의 제로가 된다"고 말했다.
방사성 원소처럼 지수함수를 따라가는 존재가 있다. 바이러스다. 바이러스는 한 마리가 두 마리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100마리가 200마리가 되는 시간이나 똑같다. 한 마리에서 두 마리가 되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릴수록 빨리 증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바이러스가 훨씬 더 위험하다.
이덕환 교수는 "반감기가 길수록 위험한 물질로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감기란 방사선 원소가 절반만 남는 시점을 알려준다기보다, 한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는 속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 "반감기가 짧으면 방사성 붕괴가 빠른 속도로 일어나 방사선이 집중적으로 나오므로 그만큼 위험하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