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주간조선 기자

‘하이데어’, ‘돛단배’, ‘1km’…, 모두 스마트폰 앱(어플리케이션) 이름입니다. ‘위치기반 SNS’쯤 되는데, 앱 사용자가 있는 곳을 바탕으로 주변에 있는 친구를 연결해주는 앱입니다.

무작위로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은 ‘돛단배’, 근처에 있는 사용자 한 명을 콕 집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하이데어’ 앱입니다. 올 7월 29일 오후 2시 45분쯤, ‘돛단배’를 이용해 “18 여자, 영화?”라는 메시지를 하나 띄웠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첫 성관계 연령이 13.6세라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의 조사 결과를 갖고 10대 청소년들의 성(性)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5분 만에 11개의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너내꺼해랑”이라는 메시지는 조금 낯뜨거웠고, “오케이”, “사진 보여줘”, “예뻐?”라는 답장도 있었습니다. “오늘 볼 수 있어?”라는 메시지도 모두 10대 청소년이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청소년들의 첫 성관계 연령 13.6세, 10대 남학생 가운데 54.5%가 “음란물 접촉 경험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에 있는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는 10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실제적인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하!센터를 찾은 남학생들이 ‘연애’를 주제로 마인드맵을 그리는 모습(왼쪽). 아하!센터의 찾아가는 성교육 버스인 ‘해피버스’에서 여학생들이 성교육을 받는 모습(가운데). 아하!센터 성교육 체험장을 다니며 학생들이 체험형 과제를 수행하는 모습(오른쪽).

서울 강서구에 산다는 김명훈(가명·17)군은 ‘틱톡’이라는 SNS 앱을 이용해 대화하자고 했습니다. “영화 말고 술은 어떠냐”고 물어 왔습니다. 친구 두 명을 더 데리고 오겠다고 해서 서울 신림역 부근에서 김군을 만났습니다. 밤 9시, 김군의 얼굴에는 당황함이 역력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온 저 얼굴을 아무리 봐도 18살로는 안 보이는 나이 든 ‘누나’였으니까요. 10대의 성문제를 취재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좀처럼 입을 열지 않다가 문득 김군의 친구 김준우(가명·17)군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됐네요. 얘 섹스 중독이에요.” 알고보니 김명훈군은 “여자가 없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이성 관계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이 취재에서 제가 가장 주의한 부분은 제가 10대일 때도, 제 선배들이 학생일 때도 “요즘 10대 애들이란, 쯧쯧”하는 식의 얘기는 언제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10대 청소년들은 다릅니다. 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했던 철없는 10대, 또래집단에서 힘을 과시하던 무서운 10대가 아닙니다. 타칭 ‘섹스 중독’이라는 김명훈군은 학교에서 평범한 학생입니다.

수도권 4년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평범한 가정의 보통 학생입니다. 10대들이 ‘섹스 중독’이니 ‘포르노 중독’이니 하는 말을 쉽게 뱉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성이 청소년들에게 여과 없이 노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매년 발표하는 ‘청소년 유해환경 접촉 종합 실태조사’를 보면 ‘가장 최근에 가진 성경험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에 2008년에는 ‘이성친구’라고 답한 사람이 52%였는데, 2011년에는 72.5%였습니다.

20~30대 사이에서도 종종 논란이 되는 혼전 성관계가, 10대에서는 당연하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김명화 아하청소년센터장은 “과거에는 연애와 성관계가 일부 위기청소년들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차 만난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성문제가 요즘은 탈선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취향의 문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 원인은 SNS나 인터넷을 통해 성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취재중 만났던 18살 남학생 정규진(가명)군의 말을 수정없이 옮겨 보겠습니다. “두 번째 사귄 여자친구와 처음 잤어요. 둘 다 처음이었는데 할 때마다 계속 아파했어요. 인터넷에 ‘여자 성감대’를 치니까 동영상까지 나오더라고요. 동영상 다운 받아서 모텔에 가서 틀어놓고 같이 보면서 실험해봤어요.”

지난 7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열린 ‘아름다움 토크콘서트’에서 성교육 강연을 하는 구성애 푸른아우성 대표.

여성가족부 자료에 따르면 10대 남학생의 54.5%는 음란물 접촉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 곳곳의 이른바 모텔촌에 가 보면 아무리 봐도 10대에 불과한 청소년들이 모텔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10대 학생들이 많이 모인다는 광진구 건대입구역 부근의 모텔촌에서 제가 목격한 청소년 커플도 있었습니다. “뭐가 잘못됐느냐”며 오히려 대들고 나왔습니다.

이 청소년 커플이 나왔던 H모텔 매니저는 “애매한 오후 시간에 오는 손님의 10%는 청소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이른 시간부터 술이며 안줏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모텔로 찾아와 방을 빌리고, 퇴실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술을 마시며 논다는 것입니다.

최근 청소년 성 관련 사건이 발생한 장소의 상당수는 모텔입니다. 모텔에서 성매매하고, 성폭행을 하고 가끔 먹고 자기까지 합니다. 쉽게 접하고, 쉽게 실천할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성을 접하는 일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김지수(가명·18)양은 “당연히 남자친구를 사귀면 자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멀쩡하고 평범한 10대 남녀학생들이 ‘性중독’, 왜?

친구 정아름(가명·17)양은 “지수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1년이 지났을 때, 친구들 모인 자리에서 ‘진도 어디까지 나갔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키스 밖에 못 해봤다고 대답했거든요. 우리가 ‘니네 뭐 하는거냐’고 놀렸어요.”

김지수양과 정아름양 역시 평범한 학생입니다. 김지수양의 부모님은 엄한 편이라 외출을 할 때도 행선지를 꼭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김양에게 성관계를 갖는데 죄책감은 없었냐고 묻자 “이런 질문 나올 줄 알았어”라며 비웃음만 당했습니다. “어른이 되면 하겠다는 친구는 있어도, 그게 타락이나 일탈의 상징처럼 되던 시기는 지났다”고 또박또박 얘기합니다.

문제는 개방된 성관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10대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2년 사귄 남자친구와 첫 성관계를 가졌던 김지수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대와는 완전 달랐죠. 아프기까지 했는데, 남자친구를 보기만 하면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아름양은 좀 더 심각한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피임을 안 했는데, 찾아보니 사후피임약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런데 처방받아야 한다는 소리에 포기했어요. 한 달은 임신한 게 아닐까, 생리 시작 안할까봐 덜덜 떨었죠.”

10대에게 성을 금기시하는 것은 이제 가능하지도 않고,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대신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성에 대해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책임이 뒤따르는지를 알려주는 일입니다.

네덜란드의 ‘No means No’ 캠페인은 어떤 경우에라도 상대가 거절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핀란드에서는 연간 40시간 이상 성교육을 하는데, 15세가 되면 콘돔이 들어 있는 ‘성교육용 선물 꾸러미’를 받습니다. 미국에서는 12학년(우리나라 고3)에게 성교육 필수 과제로 ‘아이 키우기’를 시킨다고 합니다.

성관계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책임은 임신과 출산, 양육처럼 무거운 문제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에는 쾌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 안아주는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스웨덴의 성교육 전문가 레나 황의 지적은 참고할만 합니다.

“스웨덴의 학교는 ‘청소년이 성관계를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성관계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관련된 교육과 정보를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것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