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지난 9월 1일 ‘여의도 당사 입주식’에서 파란색 당기를 흔들고 있다.

민주당이 당색(黨色)을 파란색으로 바꿨다. 색은 가장 강력한 상징이며 기호다. 민주당은 당사를 서울 영등포에서 국회 앞 여의도로 옮기면서 당의 컬러도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화를 줬다.

민주당 지지자 입장에서 보면 파랑은 ‘난데없다’는 느낌을 준다. 그도 그럴 것이 파랑은 줄곧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상징했던 보수정당의 색이었다. 31년간 경쟁 정당의 색이었다. 서구 정당사에서도 파랑은 대부분 보수정당의 색깔이었다. 대의민주정치의 원조인 영국의 경우, 파랑은 보수당의 상징색(미국의 경우 공화당은 붉은색, 민주당은 파란색)이다.

한국의 민주당은 오랜 세월 노랑을 선호했다. 1987년 대선에서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대중 후보는 노란색을 썼다. 그가 노란색을 택한 것은 필리핀의 ‘피플파워(People Power)’에 영향을 받은 측면이 컸다. 1986년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피플파워를 상징하는 게 노란색이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이 제1야당이 되었을 때 언론은 ‘황색 바람’이라고 표현했다. DJ는 정계 복귀 후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면서 당의 로고를 녹색으로 바꿨다. 그리고 1997년 DJ는 집권에 성공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사모가 노란색을 들고나오면서 노랑은 노무현의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란 풍선, 노란 스카프, 노란 희망돼지저금통 등이 등장했다. 노무현 후보가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노란색은 ‘노무현’의 상징이 됐다. 지난 5월 23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4주기.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노란색으로 도배가 되었다. 수천 개의 노란색 바람개비, 노란색 모자, 노란색 조끼가 등장했다.

◇"민주당 당색 바꾼 것은 '노랑의 저주' 풀리길 기대하는 변화의 몸부림"

이런 노란색을, 김한길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 지도부는 파란색으로 바꿨다. 지난 대선 당시를 돌이켜보면 민주당은 '색채 이미지 전쟁'에서 뒤졌다는 평을 자주 받았다. 새누리당은 빨간색으로 통일이 되었지만 민주당은 노란색, 녹색 등으로 뒤죽박죽이었다. 색채 이미지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왜 저렇게 색채의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빨간색으로 바꾸고 선거 운동에서 통일성을 이룬 새누리당은 재집권에 성공했고, 색채 이미지에서 노란색과 녹색을 함께 썼던 민주당은 실패하고 말았다.

민주당이 당색을 바꾼 것은 노란색으로는 정권 탈환이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노란색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다는 데 내부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노란색이 친노의 색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2007년 이후 연거푸 패배한 ‘노랑의 저주’가 풀리길 기대하는 변화의 몸부림이라는 해석도 있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이 정당의 색채 이미지가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당색을 빨간색으로 바꾼 것은 당 지지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시점이었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실의 중앙선관위 디도스(DDos) 공격이 일어난 직후였다. 총선에서 100석을 넘기기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압도적이던 시점이다. 한나라당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31년간 써온 파란색을 버리고 우리나라에서 금기색이나 다름없는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보면 혁명을 일으키는 진영에서 바리케이드 위에 붉은 깃발을 흔드는 장면이 나온다. 1917년 10월혁명과 1949년 중국공산혁명의 깃발이 붉은색이었다. 1900년 창당된 영국 노동당은 당기에 빨간색으로 입혔다. 오랜 세월 붉은색은 혁명의 상징이었고 좌파의 기호였다. 그래서 ‘레드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겼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일반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깨고 빨강을 택했다. 이 작업은 국민대 조형대 학장 출신 변추석 홍보위원장이 주도했다. 그 효과였는지 모르지만 새누리당은 대다수의 총선 참패 예상을 깨고 과반수를 차지했으며,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역시 승리했다.

유럽 좌파 정당의 하나인 녹색당은 아예 색깔명을 정당 이름으로 그대로 쓴다. 숲의 색깔인 녹색은 환경과 생태주의의 상징색이다. 녹색당은 좌파정당으로서 환경과 생태주의 철학에 입각해 일관되게 핵무기를 반대한다. 1998년 총선에서 약진한 독일 녹색당은 역시 좌파인 사민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꾸렸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연립정부를 색채에 빗대 ‘적록(赤綠)동맹’이라고 표현했다. 사민당은 진보의 색깔인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삼고 있다는 데서 이런 조합이 등장한 것이다.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의원이 소속된 통합진보당은 보라색이다. 왜 보라색인가? 총선과 대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좌파진영은 앞날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진보의 재구성’을 콘셉트로 정했고, 이것을 색채로 표현한 게 ‘적·녹·보 연대’이다. 노동의 적색, 생태의 녹색, 여성과 인권의 보라색을 묶는 연대라는 뜻이다.

◇“사람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87%”

색채는 인간의 감각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많은 학자들이 색채 이미지와 인간 감각활동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노무라 준이치는 자신의 저서 ‘색의 비밀’에서 “사람의 오감 가운데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87%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의 색채학자 체스킨은 “형태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보다 정신적이고 이성적이지만 색채에 대한 반응은 감정적”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당의 색과 선거의 함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이 나왔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이민형씨의 석사학위 논문 ‘정당의 색채 이미지에 대한 유권자 태도가 표심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그것이다. 이 논문의 부제는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광고팀장은 김재용씨였다. 이민형씨는 이 논문을 쓰기 위해 김재용씨와 인터뷰를 했다.

- 이번 선거 결과를 떠나서 유권자 입장에서 정당의 색채 이미지가 포지티브적인 면과 네거티브적인 면에서 어떤 면에 더 영향을 주었나. “여론조사를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 색채 때문에 선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아니지만 색채 이미지가 유권자의 무의식적인 면에서 우선시되는 경향이 분명 있어서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노란색이 유권자들에게 네거티브적이냐 포지티브적이냐는 대답은 하기 어렵다.”

- 민주통합당이 두 가지 색을 혼용해서 쓴 것에 대해 유권자들은 어떻게 느꼈다고 보나. “노란색과 녹색을 혼용해서 쓴 것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단일색으로 좀더 강하게 접근했다면 더 좋았을 것으로 본다. 선거 후 새누리당에 비해 약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민형씨는 논문의 결론에 대해 “정당의 색 아이덴티티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그 정당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서 표심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광온 홍보위원장은 민주당의 색 혼용과 관련한 전화 인터뷰에서 “대선 당시 논의는 있었지만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냥 갔다”면서 “(결정하지 못해)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선거 패배 후 색채 변경을 진지하게 검토했고, 지난 5월부터 색채 변경에 대한 공모작업을 해왔다. 3개 업체가 응모했고, 이 중 1개 업체를 선정해 비밀리에 색채 변경작업을 해 파랑으로 바꿨다. 색채 변경에 대해서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결국 색채 변경에 대한 평가는 선거 결과만이 말해줄 것이다.

- 더 많은 기사는 2013년 9월 9일 발매된 주간조선 2273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