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은 흉기에 가깝다. 100km를 훌쩍 넘는 야구공은 타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며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때문에 투수가 일부러 타자를 맞히는 건 동업자 정신에 입각, 가급적이면 벌어져선 안 될 일이다.
그렇지만 야구에는 보복구라는 것이 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팀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시각이다. 사실 보복구에도 도리가 있는데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보복구가 나오더라도 가급적이면 엉덩이나 허벅지 등 부상 위험성이 적은 곳으로 공이 향한다.
8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LG와 삼성의 경기에서 보복구가 등장했다. 치열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팀은 마치 포스트시즌인 것처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펼쳤다. 사건이 터진 건 6회초. 무사 1루에서 타석에 선 배영섭은 LG 선발 리즈의 강속구에 머리를 맞고 곧바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후송된 배영섭은 검진 결과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삼성 더그아웃은 잠시 웅성거렸지만 곧바로 경기에 집중했다. 하지만 7회초 삼성 공격에서 선두타자 박석민이 리즈에게 또 맞았다. 그제야 박근영 구심은 리즈에게 경고를 했고, LG는 리즈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박석민이 맞았을 때는 더 크게 동요한 삼성 더그아웃이지만 벤치 클리어링까지 가지는 않았다. 대신 안지만이 총대를 메고 마운드에 섰다. 7회말 1사 주자없는 가운데 정성훈이 타석에 들어왔고 안지만은 정성훈의 등쪽을 향해 공을 던졌지만 정작 맞히지는 못했다. 놀란 정성훈은 안지만을 노려봤고 안지만 역시 정성훈을 바라보기만 했다.
안지만 스스로가 보복구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노리고 던진 것으로 보인다. 공을 맞고 실려나간 배영섭과 정성훈 모두 이날 홈런을 친 선수이며 선배의 등을 향해 공을 던진 안지만의 표정도 사과의 뜻은 없었다. 박근영 구심은 안지만에게도 경고를 줬고 이후 안지만은 정성훈과 정상적으로 승부를 했다.
결과적으로 안지만이 보복구에 실패한 건 역풍으로 돌아왔다.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를 허용했으면 1사 1루가 될 상황이었지만 안지만은 정성훈에게 2루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2-3 한 점차로 뒤지고 있었던 삼성은 타격감이 절정인 큰 이병규를 고의4구로 걸렀고 현재윤과의 승부를 택했다. 하지만 현재윤은 기습번트 내야안타로 1루에 살아 나갔고 결국 만루에서 작은 이병규에게 2타점 적시타를 내주고 말았다.
동료의 복수에 실패한 삼성은 경기까지 내주고 말았다. 보복구는 원래 승부에 큰 지장이 없을 상황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1사 주자없는 상황, 안지만이 택한 상황은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제구에 실패하며 경기를 더욱 어렵게 끌고 갔다. 삼성이 8회와 9회 3점을 뽑았기에 삼성 입장에서는 더욱 아쉬웠을 법한 장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