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학회 주최로 22일 열린 '2013 한국 정치 세계 학술대회' 참석자들은 향후 급변할 동북아의 국제 정치에서 남북통일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노구치 다카시 일본 니가타현립대학 총장(도쿄대 명예교수)은 "한국 국민이 북한과 통일할 준비가 돼 있는지부터 생각하는 게 먼저"라며 "지금 남북 간 경제 격차는 한국과 방글라데시, 한국과 몽골보다도 훨씬 더 크다. 그 비용을 한국 국민이 받아들일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국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한반도 통일이 중국의 이해에 해(害)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22일 고려대에서 열린 한국정치세계학술대회에 참여한 국내·외 패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마이클 마스탄두노 미국 다트머스대 학장, 이노구치 다카시 일본 니가타현립대 총장, 정재호 서울대 교수, 김병국 고려대 교수,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 손열 연세대 교수.

마이클 마스탄두노 미국 다트머스대 학장은 "경제 상황이 악화돼 북한 체제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이 붕괴하지 않으려면 먼저 스스로 급격한 변화를 해야 하는데, 나는 북한 김정은이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마르셀 버델스키 폴란드 그단스크대 교수는 "김정은 정권은 이미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다"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북핵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폴란드·스웨덴·스위스 등 유엔 중립국 감독위원회(NNSC) 국가가 한반도 평화 체제 마련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지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한 '2012년 한국인의 통일 인식조사'에 따르면 젊은 층일수록 '통일 필요성' 인식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남녀 1525명에 대한 조사에서 "통일에 아주 관심 있다"는 60대 이상 응답자는 39.2%인 반면 20대 응답자는 8%에 불과했다. 또 "통일에 별 관심이 없다" 또는 "전혀 관심 없다"고 응답한 60대 이상은 11%에 불과했지만 20대는 두 배 많은 23%였다. 김 연구위원은 "남북 분단 이전 세대가 줄어들면서 생긴 '세대교체' 현상뿐만 아니라 통일 비용에 대한 부담감도 그 원인"이라고 했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의 또 다른 관심은 중국의 부상(浮上)과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동아시아에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에 집중됐다.

마이클 마스탄두노 미국 다트머스대 학장은 "1970년대 미·소는 군비를 축소하고 비핵화에 나서는 등 협력을 하면서도 니카라과·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충돌했다"며 "앞으로 미·중 관계도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미·중의 관계가 "한국·일본 등 중견 국가에 기회가 될 것"이라며 "예를 들어 한국이 미국에 일본 수준의 원자력 이용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중국의 빠른 부상이 동아시아 국가의 안보 딜레마를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과 중국 어느 쪽이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기 시작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이미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어디에 서야 할지를 놓고 고통받고 있는 동아시아에 더 큰 위협을 줄 것"이라며 "그런 상황이 되면 미·중은 득(得)보다 실(失)이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서 손열 연세대 교수는 "동아시아 지역 안보 질서에는 미·중 관계뿐만 아니라 역사 문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이 동아시아 갈등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다"며 "역사적인 사과를 하는 데 실패한 일본이 주도권을 가지고 해결에 나선다면 지역의 안정과 번영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