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홍익대 근처의 한 건물 지하 1~2층은 오후 7시에 이미 불이 다 꺼졌다. 깜깜한 가운데 색색의 레이저가 비처럼 쏟아졌고 데이빗 게타의 '타이태니엄'이 쿵쾅대며 온몸을 울렸다. 지하 1층에 있던 20대 중반의 여자들은 손에 맥주잔을 든 채 웃고 떠들다가 자기 차례가 되면 레인(lane) 앞에 섰다. 깜깜한 가운데 번쩍거리는 형광 노란색 레인 사이로 굴린 형광 분홍색의 공은 도랑으로 빠졌다. 핀을 하나도 못 맞혔는데도 다들 손뼉을 치며 깔깔 웃는다. 김재원(23)씨는 "진지하게 볼링을 치려는 게 아니다. 노래방 가서 순위를 매기며 놀지 않듯이 여기서도 승부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연예인도 자주 찾는 '볼링펍'
생긴 것도 분위기도 클럽이나 바와 똑같은데, 볼링장이다. 과거에 회사원들과 중년들이 자주 찾던 볼링장이 '볼링펍(bowling pub)'으로 바뀐 것이다. 기존 볼링장과 규모나 생김새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과 레인을 형광색으로 칠하고 일렉트로닉이나 댄스 음악을 틀어놓으며 술과 안주 등을 함께 판다.
1990년대 생겨난 '록(Rock)볼링장'과 같은 클럽형 볼링장들이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사라졌다면, '볼링펍'은 '좀 놀 줄 아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자리 잡았다. 배우 김수현이나 지드래곤, 투애니원 등 20대 연예인들이 볼링펍을 자주 찾는다는 게 SNS 등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부터 더 인기다.
한 스포츠 브랜드는 서울 청담동 볼링펍 '삐에로 스트라이크'에서 연예인을 불러다 파티를 열었을 정도다. 서울 강남과 홍익대를 중심으로 한두 곳씩 생기더니 분당과 인천·부산·대구·광주 등에도 생겨났다.
홍익대 근처 볼링펍 '태화볼링장'에서 일하는 최선희씨는 "지난해 3월부터 평일 낮에는 주부 회원들을 위한 일반 볼링장, 오후 5시부터 오전 3시까지는 야광 볼링장으로 운영해왔다. 야광 볼링엔 하루 평균 300명씩 오고, 주말에는 예약 없이는 바로 치기 힘들다. 볼링장의 '세대교체'라고 했다. 대부분의 볼링펍들은 오후 3~5시부터 다음날 오전 3~4시까지 열고, 가격은 한 게임에 1인당 5000~6000원 정도다.
◇볼링, 술, 춤…여성이 더 선호
3일 오후 8시쯤 찾아간 서울 논현동 볼링펍 '스매싱볼'에는 레인마다 탁자와 소파가 있었다. 피자와 나초 등의 음식과 술을 함께 파는 이곳에선 술집에서처럼 앉아서 술을 마시다가 볼링을 친다. 탁자 4개는 모두 가득 차 있었고, 30분 동안 예약을 하지 않고 찾아왔다 발길을 돌린 손님만 세 쌍이 있었다.
볼링장에 있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약 2대1이었다. 여자 친구 5명과 이곳을 찾은 서재희(26)씨는 "여자들이 만나서 놀 수 있는 공간이 한정돼 있다. 그렇다고 클럽에 가서 춤을 추며 남자들과 부대끼긴 싫다. 우리끼리 술을 마시면서 음악을 들으며 활동적으로 놀 수 있는 공간은 클럽을 제외하곤 이곳이 유일하다"고 했다. 대학교 과 친구인 남자 둘, 여자 셋과 함께 온 김희곤(21) 씨는 "볼링은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배울 수 있고,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특히 남자와 여자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고 했다.
"단체 예약 손님 중에선 퇴근 후에 오는 회사원들이 많다"는 직원들의 말처럼 회식(會食) 문화의 변화도 볼링펍 인기에 한몫한다. 회식 때 경기도 분당에 있는 볼링펍을 자주 찾는 직장인 정재현(31)씨는 "회식 문화를 바꾸기 위해 영화나 공연 관람을 해봤지만 도무지 '함께 논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볼링펍에 가면 술도 별로 안 마시면서도 다 같이 게임 하며 소리지르며 놀 수 있기 때문에 회식 분위기가 제법 좋은 편이다"고 했다. 정씨는 "클럽 같은 곳에 가보지 못했거나 그 앞에서 퇴짜를 맞았던 중년 상사들이 더 좋아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