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1시(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외곽의 글렌데일(Glendale)시 센트럴파크. 높이 1m 남짓한 동상을 덮고 있던 보라색 천이 걷히자 한복을 곱게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상(像)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다섯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김복동(88) 할머니가 부축을 받으며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소녀상의 머리와 볼을 쓰다듬었다. 현지 여학생들은 소녀상 목에 하얀 꽃다발을 걸어줬다.
서울 주한 일본 대사관 맞은편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과 똑같은 동상이 태평양 건너 글렌데일에도 세워졌다. 이는 해외에 세워진 첫 소녀상으로, 캘리포니아 한인들이 건립을 추진한 지 2년여 만에 맺은 열매이다. 인구 20만명의 소도시 글렌데일에는 한인 1만여명이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5%이다.
소녀상이 세워진 센트럴파크는 바로 옆에 도서관과 백화점이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다. 300여명이 참석한 소녀상 제막식은 글렌데일시와 한인 교포들에게 축제이자 일본 정부에 대해 경고를 하는 기회였다. 김 할머니는 "내가 죽기 전에 시간이 얼마 없는데, 일본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렌데일시는 2007년 7월 30일 연방 하원이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기념해 지난해 이날을 '한국 위안부 피해자의 날'로 지정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행사에 유감을 표시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31일 "그동안 글렌데일 시장과 시의회를 상대로 소녀상을 설치하지 말라고 요구해왔다"며 "위안부 문제를 정치·외교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소녀상은 한국에 조각상을 세운 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가 새로 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설명하는 석판이 추가됐다.
김운성씨 부부는 일찌감치 현지에 건너와 소녀상 설치 작업을 둘러보고 있었다. 부부는 "처음 소녀상을 빚을 때부터 전쟁의 아픔을 겪고 여성 인권에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전했다.
소녀상 건립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건립 계획이 알려지자 일본계 주민 100여명이 공청회에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고, 시의원들에게 반대 이메일을 집단적으로 보냈다. LA 주재 일본 총영사까지 나서 언론에 소녀상 건립을 반대하는 기고문을 싣기도 했다.
글렌데일 시의원 로라 프리드먼은 "소녀상을 세우지 말라는 압력이 있었고 이메일을 수백 통 받았다"며, "역사의 진실은 억압할 수 없으며 결코 숨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일본계 미국인도 일제의 전쟁 범죄를 규탄하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일본계 시민 단체인 'NCRR(Nikkei for Civil Rights & Redress)'의 캐시 마사오카 대표는 "일본은 위안부를 비롯해 2차대전 때 저지른 범죄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는 잘못된 역사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CNN·NBC 등 현지 주요 언론은 물론이고 중국·일본 매체들도 이날 행사 취재에 나서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 언론들은 소녀비 건립을 주도했던 가주한미포럼 관계자에게 "소녀비 건립이 오히려 한·일 갈등만 유발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가주한미포럼 윤석원 대표는 "소녀상 건립은 미국 시민의 힘과 뜻과 성금으로 만들어 낸 풀뿌리 운동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프랭크 킨테로(전 글렌데일 시장) 시의원은 "소녀상은 위안부 희생자를 기리고, 이곳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