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최대의 격전지였던 철원, 대한민국 최북방의 섬 백령도. 긴장과 대치의 공간 철원 DMZ를 예술의 공간으로 재해석한 '리얼 디엠지(DMZ) 프로젝트 2013 : 보더라인', 군인과 실향민의 섬 백령도를 위로하는 '백령도_52만5600시간과의 인터뷰'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정전 60주년을 맞은 한반도에서만 가능한 두 전시다.
◇철원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3 : 보더라인'전
6·25전쟁 37개월간 전투의 3분의 2는 지금의 'DMZ(비무장지대)' 안팎에서 벌어졌다. 철원은 DMZ 총 248㎞ 중 약 80㎞를 품은 땅. 일제의 한반도 수탈 통로 경원선 길목에 번성했고, 전쟁 후 완벽한 폐허가 됐으며, 지금은 군사적 대치 덕에 잘 보존된 자연을 갖게 된 곳이다. 7개국 13개 팀이 '현대사의 아이러니'가 얽힌 철원의 장소마다 총 20여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녹슨 철마(鐵馬)가 멈춰선 월정리역, 얼음창고와 금융조합,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 등이 전시장·공연장으로 변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DMZ평화문화관. 정연두의 '태극기 휘날리며-B 카메라'는 동명의 영화 장면을 재구성했다. 정 작가는 "지난 3월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현 전시장 바로 곁 철책선 내에서 촬영한 작품"이라고 했다. 재현된 영화의 공간은 긴박하지만, 배경이 된 실제 철책은 고요하다. 그 간극에 기묘한 부조리가 있다. 평화관 건물 앞 광장에는 싱가포르 작가 히만청의 '백년의 고독', 한국 작가 구정아의 '의식 확장' 등 설치 작업을 만난다. 구(舊) 민통선 초소 등 의외의 장소에 걸린 윤수연 작가의 사진 작품들도 흥미롭다.
전시 기간인 9월 22일까지 주중엔 철원 '철의삼각전적지'(033-450-5558)에서, 토요일엔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출발(033-455-8275)하는 전시 투어가 마련돼 있다.
◇'백령도_52만5600시간과의 인터뷰'전
설치미술가 김기라(39)는 최근 냉면을 먹다가 전쟁을 떠올렸다. '평양' '함흥' 등 북쪽 지명이 흔적기관처럼 남은 냉면이 남북의 매개체란 생각이 들자 북녘 동포에게 편지를 썼다. 이달 초 백령도 사곶 해수욕장에서 편지를 담은 유리병을 띄워보냈다. 그 장면을 찍은 영상을 백령도 제7호 대피소에서 상영한다.
북한 황해도 장산곶과 13㎞ 거리, 대한민국 최북단의 섬 백령도에서 전쟁은 냉면처럼 일상적이다. 백령도에서 나고 자란 주민 이은실(43)씨는 "포(砲) 소리를 들은 육지 사람들은 긴장하지만, 우리는 '또 쏘는구나' 그냥 넘긴다"고 했다. 이 무심한 '전쟁의 섬'에서 40여명의 작가가 다음 달 7일까지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정전 6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이다.
"나오쇼, 나오쇼, 나오지 마쇼, 나오지 마쇼." 미술가 이지수(25)는 7호 대피소 바깥벽에 붉은 바탕에 흰 글씨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절박한 이 문구는 소설집 '백령도의 추억' 중 김용성의 '강 건너 북촌'에서 발췌한 것. "6·25 전쟁 직후 감방에서 간수의 눈을 피해 포로들이 나누는 대화입니다. 안전해졌다는 안심, 그리고 다시 위험하다는 경계의 말. 백령도 상황과 똑 닮았지요." 백령도는 '심청전'의 배경. 화가 서용선(62)은 인당수가 내려다보이는 심청각 안에 어린 심청을 안은 심봉사 그림을 내걸었다.
백령도 주민 중 상당수가 전쟁을 피해 황해도에서 맨몸으로 건너왔다. 전시는 실향의 세월을 이겨낸 주민들에게 건네는 격려이자, 북녘 동포들에게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다. (032)76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