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정유진 기자]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와 그의 오랜 동료 스즈키 토시오는 요즘 유행인 3D 애니메이션 제작 계획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마자 "없다. 정말 없다"고 잘라 말�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는 26일 일본 도쿄도 코가네이시 니바라키 아틀리에서 점점 더 정교화 되기만 하는 애니메이션 기술 발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애니메이션은 아름다운 꿈이라 생각한다”며 “애니메이터가 된지 50년째다. 애니메이션은 꿈인데 현재는 꿈이 아니라 비즈니스 수단이 되는 것 같다. 그 때문에 지금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은 없어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애니메이션이 꿈이 아닌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현재는 여러 가지 애니메이션 영상들이 TV나 DVD 영화로 보이고 있다. 이 때 우리가 보는 것은 그걸 만든 사람들이 어떤 렌즈를 선택해서 보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기술이 많이 발달하고 있어서 굉장히 선명한 렌즈로 보면 인간의 능력 이상으로 본 것을 표현한다”며 “렌즈를 통해 찍어온 사진에 의해, 렌즈에 의해 사람들이 지배를 받는다. 나는 렌즈 아닌 신경으로 멀어지는 풍경, 건물을 보게 되고 그걸 머리에 기억하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의 감각이 점점 더 열악해지는 것 같다. 이런 현상 젊은 스태프들에게 많이 본다”고 인간의 눈이 아닌 렌즈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번 영화 속에는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지진이나 프로펠러 소리 등의 효과음을 사람의 육성으로 표현해낸 것. 스즈키 토시오는 "기술 혁신으로 그림과 소리가 좋아진 반면 잃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밀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정밀해지기만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인간의 소리로 (효과음을) 내보면 어떨까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제안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현재 느끼던 바가 있던 터라 대 찬성이었다. 극단적으로 전부 인간의 소리로 내면 어떨까, 둘이서만 소리를 맡아볼까 얘기를 하기도 했다.(웃음) 소리 전문가에게 의뢰하고 그 분 중심으로 비행기와 지진 소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소리를 냈다"고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난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3.11 지진’으로 인해 1920년대 관동대지진이 묘사된 이번 영화 제작을 다시 한 번 고려하게 됐던 상황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그 지진 신의 콘티를 그리고 나서 실은 ‘3.11 지진’이 일본에서 일어났다. 그 피해가 점점 크다고 느끼게 됐을 때 이 작품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했다”며 “스태프들 중에는 더 이 작품 못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패닉을 주는 영화로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기에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창조의 시간은 10년”이라며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스스로 정립한 관점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머리카락의 경우 그냥 머리에만 붙은 게 아니다. 그것은 긴장을 하거나 하면 쭈뼛 선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미묘하게 변한다. 나는 그 미묘함을 발견했을 때 세계가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자신의 창조의 시간에 속하는 20대 후반 시절, 세계의 미묘함을 발견한 것에 대해 “세상의 비밀을 다 안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섬세한 그림체가 특징인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저력이 어떤 원동력에서 나오는지를 알게 하는 말이었다.
기자간담회의 마지막이 다가올 때쯤, 한 기자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한 토크쇼에서 오열을 하셨다고 들었다”라고 질문을 했다. 이에 그는 “오열까지는 아니고, 일본에서도 여러 기자회견에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이 (내가) 굉장히 오열했다는 식으로 말해서 과장이 된 듯하다. 눈물을 조금 흘린 정도였다. 울 때 울 이유가 있겠나. 감독이 사실 울면 안 되는데 반성하고 있다”며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이번 작품에 대한 감독의 특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동시에 영화 속 실제 주인공으로 밝힌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1982)와 소설가이자 시인 호리 타츠오(1904-1953) 뿐 아니라 감독 그 자신의 젊은 시절 모습도 주인공의 모습 어딘가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짐작케 했다.
앞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일본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부재에 대해 비판하며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이미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사죄해야 한다" 등의 강한 발언으로 현재 일본의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낸 바 있다. 현대 기술과 역사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은 5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거장의 발언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한편 ‘바람이 분다’는 1920년대 살았던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1982)의 일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설가이자 시인 호리 타츠오(1904-1953)의 동명 소설 속 로맨스를 하나로 버무린 작품.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꿈과 사랑을 그려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일 개봉해 6일 만에 150억 엔의 성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오는 9월 개봉할 예정.
대원 미디어 제공